살인사건한반도

북한 연쇄살인마 박명식 사건


박명식은 북한의 엽기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1990년 4월부터 10월까지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에서 청소년과 여성 등 12명을 살해했다. 죽인 후에는 피해자의 복부를 칼로 난자해 간을 꺼내 먹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북한을 공포에 떨게 한 박명식, 그는 왜 인육을 먹은 것일까.

박명식은 지병인 간경화를 앓았는데, 갈수록 증세가 심해졌다.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큰 병원과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 치료받았지만 별 효과를 못했다.

‘이렇게 죽나 보다’하며 체념하고 있을 즈음, 평소 가깝게 지낸 직장 동료로부터 용하다는 점쟁이 얘기를 듣는다. 박씨는 귀가 솔깃해지며 점쟁이 소개를 부탁한다.

박씨는 점쟁이에게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금 간경화를 심하게 앓고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 점쟁이는 점을 치는 시늉을 하더니 “사람의 간을 먹어야만 간경화가 완쾌가 된다는 점괘가 나왔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의 간이어야 더욱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씨는 고민에 빠졌다. 실 날 같은 희망을 갖고 점쟁이를 찾았지만 ‘극약 처방’만 받은 셈이었다. 내가 살려면 다른 사람을 죽여 간을 먹어야 한다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점점 병세는 악화돼서 살날이 머지않은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죽을 것이면 점쟁이의 말대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박명식은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해마다 봄, 가을이면 고등·중학교 3학년 이상 학생들을 협동농장 노력지원에 의무적으로 동원시킨다. 이들은 농장원 가정집에 2~3명씩 나눠 잠을 자고 식사는 단체로 한다. 박씨는 이 학생들을 노리기로 한다. 밤에 자고 있을 때 범행에 나서면 수월할 것 같았다.


박씨는 학생들 숙소 근처에 숨어 기회를 엿봤다. 밤 11시쯤이 되자 낮에 일을 해서 피곤해서인지 학생들 모두 곤한 잠에 빠졌다. 학생들의 숙소에 침입한 그는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학생(15)을 노렸다.

박씨는 조심스럽게 다가간 후 학생의 입을 막고 흉기로 급소를 찔렀다. 피 흘리는 학생을 안고 나오려다 개가 짖어대고 인기척이 들리자 학생을 마당에 내려놓고 도망쳤다. 흉기에 찔린 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며칠 후 박명식은 두 번째 범행에 나섰다. 이번에는 첫 번째 범행을 저지른 곳에서 약 4km쯤 떨어진 농장을 노렸다. 이번에도 협동농장에 지원 나온 학생들을 노렸다. 박씨는 이중 한 학생을 납치해 살해했고, 복부를 가른 후 간을 꺼내 먹었다. 피해 학생의 시신은 농장원에 의해 발견됐다.

세 번째 희생자는 신포 시내에서 발견된 20대 여성이었다. 피해자의 시신은 참혹했다. 복부가 훼손되고 간 일부가 사라졌다. 이후에도 신포시와 인근 지역에서 추가로 10여건의 연쇄살인이 발생했다.

사람이 하나 둘씩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자 신포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신포시 보안 당국은 바짝 긴장하며 검인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유력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고, 용의자를 특정하지도 못했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자 신포시를 책임지고 있는 당 책임비서는 ‘살인장군’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얼마 후 박명식은 또 다시 범행에 나섰다. 같은 해 가을 어느 날 추수동원을 나온 학생들을 주변을 어슬렁 거렸다. 그리고 한 학생을 노리고 범행에 나섰지만, 학생이 소리치며 저항하는 상황에 맞딱뜨렸다.

박씨는 사람들이 몰려오자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결국 주민들에 의해 붙잡혔다.

이로써 박명식의 연쇄살인도 막을 내렸다. 그에게 희생된 사람은 총 12명이었다. 신포 보안서로 연행된 박명식은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보안서원들은 박씨에게 ‘간 빼먹으라’고 말한 점쟁이도 체포했다. 박씨는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91년 10월 중순 함경남도 신포시 인민재판소는 박명식에 대해 공개총살형을 선고하고 집행했다. 점쟁이에게는 살인교사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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