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노예들의 저주 깃든 ‘라로리 하우스’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중심가에는 3층짜리 고급 저택이 자리잡고 있다.
1831년 처음 이 집을 지은 마리 델핀 마카티 라로리 부인의 이름을 따서 ‘라로리 하우스(LaLaurie House)로 불린다. 겉모습은 웅장하고 내부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최고급 자재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라로리 부인은 당시 지역 유지인 마카티 일족의 일원이다. 이들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 이 지역에 정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광범위한 부동산과 많은 노예들을 소유한 유지였다.
라로리는 1800년 6월 스페인 왕실 고위 장교와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으나 항해 중에 죽었고, 8년 후인 1808년 6월에 변호사인 장 블랑크와 재혼해 4명의 자녀를 뒀다.
이중 딸 한 명은 척추 기형 때문에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두 번째 남편도 결혼 8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1825년 라로리는 20살 연하이면서 딸 치료를 맡던 의사 레너드 루이스 니콜라스 랄라우리와 세 번째로 결혼한다. 그리고 7년 후 새 보금자리로 ‘라로리 하우스’를 신축해 이곳에서 남편, 5명의 자녀들과 살며 상류층 삶을 누렸다.
라로리 부인은 부와 미모를 모두 가져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여기에 가난한 이웃까지 돕는 품성으로 널리 존경받았다.
하지만 라로리 부인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남편의 잦은 외박으로 인해 다투는 일이 많았고, 이로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던 1834년 4월10일, 라로리 하우스에 불이 난다. 불은 부엌에서 시작됐고, 경찰관과 소방관이 도착했을 때 70세 여성인 요리사가 난로에 발목이 묶인 채 죽어있었다. 경찰은 이 요리사가 불을 낸 것으로 추정했다.
다행히 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화됐지만 집주인인 라로리 부인의 모습은 집안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소방관들이 다락방에 갔다가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한다. 쇠사슬에 몸이 묶인 채 불에 탄 시신이 7구나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라로리 부인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들이었다.

심지어 그 주변에는 채찍과 쇠창살이 박힌 손잡이 등 각종 고문도구들까지 있었다. 사람들은 평소 존경을 한몸에 받던 라로리 부인의 집에서 이런 것들이 나오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노예들은 라로리 부인은 천사가 아니라 변태 성욕자에다 잔혹한 살인마였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합법이었고 그녀 역시 저택 옆에 노예들만 거주하는 숙소가 따로 있을 정도로 많은 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라로리 부인은 남편이 외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노예들을 학대하는 것으로 분을 풀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잔혹했던지 다락방으로 오라는 명령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예까지 있을 정도였다.
화재 현장에서 살아남은 노예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게 학대와 고문으로 죽어간 노예들이 3년간 수십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한 번은 소녀 노예를 죽여 시신을 묻는 현장이 경찰한테 발각되기도 했지만 경찰들조차 그녀가 노예를 죽게 한 장본인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라로리 부인은 두 얼굴을 하고 살았다.
화재가 나던 날도 다락방에는 학대당하던 노예들이 있었는데, 불이 나자 라로리 부인은 자신의 죄가 들통날까봐 가족과 함께 도주했고, 노예들은 쇠사슬에 몸이 묶여 있던 바람에 도망치지도 못하고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라로리 부인의 범죄를 파악한 경찰은 수배령을 내렸으나 그녀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녀의 실체가 드러나자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으며 성난 군중은 라로리 저택으로 몰려가 창문과 집기 등을 부수기도 했다.
화재 이후 라로리 하우스에서는 각종 괴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저택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치 쇠사슬이 바닥에 찍히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텅 빈 집안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때문에 라로리 하우스에서 5년 이상 버틴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집을 떠난 후에도 갑자기 사고로 사망하는 등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흉흉한 일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은 그곳에서 억울하게 죽은 노예들의 원혼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1930년대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날 뉴올리언스 세인트루이스 공동묘지 구석에 있던 작은 묘비 하나가 벼락을 맞고 쪼개진다. 이 일로 다시금 라로리 하우스가 화제에 오르는데, 놀랍게도 이 묘비의 주인이 바로 라로리 부인이었던 것이다.
묘비에는 프랑스어로 그녀의 본명인 ‘델핀 라로리’라는 이름과 함께 1849년 12월7일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화재 직후 라로리 부인은 파리로 도주한 뒤 숨어살다가 그곳에서 62세의 나이에 사망했으며 이후 자녀들이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공동묘지에 묻은 것으로 추정됐다.
공교롭게도 묘비가 벼락을 맞고 훼손되면서 비로소 무덤의 존재가 알려지게 됐던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그녀가 죽어서나마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2007년 할리우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 저택을 구입하면서 또다시 화제가 된다. 그는 유령의 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350만달러(약 46억원)를 투자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세금과 대출금을 갚지 못해 은행으로부터 피소되는 등 파산돼 빚쟁이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이를 ‘라로리 하우스의 저주’라고 속삭였다.
이후 은행 소유가 된 이 집은 경매를 통해 텍사스 출신의 석유재벌 손에 넘어갔다. 현재 라로리 하우스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흉가로 손꼽히고 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