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사망 후 형부와 결혼한 여동생
중국 안후이성 보저우시의 한 작은 마을에는 어린 시절부터 유독 우애가 깊었던 리민민과 리퍄퍄 자매가 살았다. 자매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남매나 형제가 온전히 있는 가정에 대한 부러움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자랐다.
성인이 된 언니 리민민은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저장성 핑후의 한 옷 공장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언니는 고향이 같은 23세 동갑내기 청년 한젠타오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2012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2014년에는 두 사람의 사랑 결실인 첫째 아들이 태어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과 멈춰버린 시간
2016년, 언니 리민민은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부부는 새로 살 집을 짓기 위해 은행에서 16만 위안(약 32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빌린 상태였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남편 한젠타오는 저장성에 홀로 남아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고, 만삭이 된 언니는 첫째 아들을 데리고 고향 안후이성으로 돌아갔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떨어져 지내던 부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언니 리민민이 홀로 아이를 낳던 중 난산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끝내 배 속의 아이도 살려내지 못했다.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한걸음에 달려온 남편은 아내의 장례를 치른 뒤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는 모든 일을 손에서 놓은 채 술에 의지하며 방황하는 날을 보냈다.
그렇게 무너진 가정에서 홀로 남은 두 살배기 첫째 조카를 돌보기 시작한 사람은 동생 리퍄퍄였다.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였던 동생은 공장에 다니면서도 엄마 잃은 조카를 제 자식처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슬픔에 잠겨 몸과 마음이 망가진 형부까지 챙기며 묵묵히 언니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시간이 흘러 조카가 제법 자랐을 무렵, 동생 리퍄퍄는 조카의 손을 잡고 마을을 걷다가 이웃 주민들로부터 아이의 친엄마로 오해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동생은 문득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편부모 가정의 외로움을 떠올렸다. 조카에게만큼은 그런 외로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동생은 아이의 진짜 엄마가 되어주기로 큰 결심을 내렸다.
조카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처제
동생의 뜻밖의 결정에 친정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았다. 남편 한젠타오 역시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해 주는 처제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결혼식이나 예물 같은 형식적인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2019년 7월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마쳤다. 동생은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고향 특산물인 수제 공예품을 인터넷 생방송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예쁜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가족은 언니가 남긴 첫째 아들과 새로 태어난 둘째 딸을 모두 품에 안게 되었다. 리퍄퍄는 언니의 아들과 자신이 낳은 딸을 차별 없이 똑같은 사랑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이들의 재혼 소식이 인터넷과 주변에 알려지자 시선은 차가웠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 관계를 두고 인터넷 공간에는 도덕성을 비난하는 거친 댓글과 근거 없는 소문들이 이어졌다. 전통적인 기준 잣대를 들이대며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부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온전한 가정 안에서 함께 웃으며 건강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따가운 눈총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아들과 딸의 손을 나란히 잡고 걸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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