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사건

혜화동 무장탈영병 총격 난동사건


1993년 4월19일 새벽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2리에 K1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군인이 숨어들었다. 육군 제15사단 전차중대 소속 임채성 일병(20)이었다.

‘멍 멍 멍’ 요란한 개짖는 소리가 나자 마을주민 남현우씨(32)의 아내가 “이 새벽에 왠 개가 이리 짖지”하면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시커먼 물체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임 일병은 남씨 아내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집안으로 들어간 뒤 안방 문을 열었다. 남씨는 그때서야 눈을 뜨고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했다. 벽시계를 보니 새벽 5시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임 일병은 야전잠바 주머니에 들어있는 실탄 30발이 장전된 클립과 수류탄을 내보이며 “세상 살기 싫으니까 허튼짓하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했다. 그는 중무장한 상태였다. K1 소총과 실탄 130발, 수류탄 22발을 휴대하고 있었다. 전투복 대신 남씨의 하늘색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임 일병은 남씨에게 봉고베스타 승합차 운전을 시키고 “서울로 가자”고 목적지를 알려줬다. 남씨에게는 허튼짓을 못하게 총구를 겨눈 상태였다. 봉고차는 오전 6시20분쯤 남씨 집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남씨의 차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경기도 남양주군과 중부고속도로를 경유해 2시간 40분 만에 서울로 잠입했다. 봉고차가 동대문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였다. 그사이 수도 서울의 경비·치안은 구멍이 숭숭 뚫렸다. 남씨의 아버지는 이날 오전 6시40분쯤 “무장한 탈영병에게 아들이 납치당했다”고 철원경찰서에 신고했다.


약 35분 뒤에야 강원경찰청에 무장 탈영사실이 보고됐고, 25분 뒤인 7시35분쯤 전국 경찰에 검문검색강화령이 내려졌다. 경찰이 최초 신고를 받고 검문검색강화조치를 취하기까지 무려 55분이 걸렸다.

15사단을 관할하는 5군단 헌병대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오전 7시10분에야 무장 탈영사실을 알았다. 10분 뒤 1·2·3군사령부에 상황을 전파, 수도방위사령부에 알려진 것은 오전 8시20분이다.

정작 임 일병의 소속부대는 탈영사실을 상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무장탈영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던 것이다. 군과 경찰의 대처가 늦어진 사이 임 일병은 43번 국도를 타고 자등현(철원)~일동 이동(포천)~서파(가평)~광릉내(남양주) 등 5개 검문소가 있는 지역을 무사통과해 서울로 향했다.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근무자가 없거나 그냥 지나치게 했다. 7시45분쯤 임 일병이 탄 봉고차를 처음 발견한 광릉내 검문소에서는 근무자들이 프라이드 승용차로 뒤쫓다 놓치는 촌극이 벌어졌다.

수도권 방위를 담당하는 수방사의 대응도 허술했다. 탈영사실을 보고 받은 수방사는 수도권일대의 검문검색 보다는 경춘·경부·중부고속도로 일원에 병력을 배치, 임 일병의 서울진입을 막지 못했다.

서울에 진입한 임 일병은 오전 9시20분쯤 동대문 부근에서 남씨 집에 전화를 걸어 “아주머니, 동대문 부근인데 걱정마라”는 여유까지 부렸다. 임 일병은 오전 10시30분쯤 이스턴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30분간 휴식을 취했다.


임 일병은 군과 경찰의 기동타격대가 출동하는 낌새를 알아채고 이스턴호텔을 떠나 원남동 로터리~삼선교~성북동 로터리를 거쳐 오전 11시35분 종로구 혜화동 올림픽기념 생활체육관 앞에 도착했다.

이때 한 내리막길에서 혜화파출소 소속 경찰관 3명이 차를 세웠다. 임 일병은 총을 들고 사격자세를 취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남씨는 차에서 탈출해 언덕길을 넘어 성북2파출소로가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그도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남씨가 탈출한 후 임 일병은 수류탄을 보호통에서 꺼내 작은 배낭에 집어넣는 등 추격대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차를 세웠는데도 임 일병이 하차하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관들이 다가섰다.

그러자 임 일병은 소총을 난사하며 승합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이곳에서 차를 버리고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을 마중가던 김순애씨(여·36)를 인질로 붙잡았다. 임 일병은 지나는 차량과 부근 상점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지나던 쏘나타 승용차(홍창수·56)와 1t 트럭(최정석·27)도 총탄세례를 받았다.

트럭운전자 최씨가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트럭과 함께 인도에 쓰러졌다. 인근 오뚜기식당에서 비빔밥을 먹던 김성수씨(39·목수)는 스테인리스 창틀을 뚫고 날아온 총알에 허벅지를 맞아 다쳤다. 수류탄도 던졌으나 다행히 불을 낼 때 사용하는 소이수류탄이었다.

임 일병은 인질 김씨를 끌고 50m 떨어진 한옥으로 들어가려다 대문이 잠겨 실패했다. 이때부터 그의 광기는 극에 달했다. 다시 마구 총을 난사하고 소이수류탄 한 발을 길가에 던졌다. 임 일병은 인질을 끌고 남쪽으로 30여m쯤 떨어진 오리지널스튜디오 앞으로 달아났다.

이때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고성주씨(51·상업)가 승합차 뒤에 숨으려하자 머리에 정조준 사격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임 일병은 명륜동1가 최재철씨(55) 집안에 살상용 수류탄을 던진 뒤 총을 난사해 가정부 김성규씨(여·40) 양쪽 대퇴부에 총상을 입혔다.


인질 김씨를 끌고 달아나던 임 일병은 명륜동에 있는 한 빌딩 앞에서 30대 여성과 어린이 2명을 다시 인질로 잡았고, 지나가던 라보트럭(운전자 이성근·58)을 세워 이씨 등 5명을 인질로 잡아 군경과 대치했다.

임 일병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김순애씨의 가슴을 총으로 쏴 중상을 입혔다. 다시 지나가던 베스타승합차(운전자 형남두·23)에 총격을 가해 형씨가 부상당했다. 임 일병은 이 승합차에 인질들을 태우고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약 5분 동안 전쟁을 방불케 하는 도심 총격전이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수방사 특별경호대 소속 군인들은 임 일병을 정조준 해 집중 사격을 가했다. 이때 양쪽 다리와 오른쪽 귀, 복부 등에 총상을 입은 임 일병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임 일병은 검붉은 피를 흘린 채 승합차 사이에 널브러졌다.

특경대가 재빨리 임 일병의 손과 배를 발로 짓눌렀다. 이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임 일병이 꿈틀대자 군인들이 총구를 바짝 들이댔다. 임 일병은 병원으로 실려가 수술을 받았다. 이로써 무장 탈영병의 도심 광란의 살인극도 끝이 났다.

이 사건으로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숨진 고성주씨는 성북구 돈암동시장에서 작은 채소가게를 운영하며 1남4녀를 키우는 가장이었다. 이날 고씨는 아침부터 밀어닥친 주문에 응하느라 아침식사도 거른 채 종로구 명륜동 거래처에 배달 갔다가 변을 당했다.

고씨의 아내는 배달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 식당 아줌마로부터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연락을 받고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게 됐다. 병원에서 남편의 죽음을 맞닥뜨리고는 대성통곡했다.


인질로 붙잡혔다가 가슴에 총상을 입은 김순애씨의 남편은 “백주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 도대체 군경은 탈영병이 서울 도심까지 아무런 제지없이 들어올 때까지 뭘 했느냐”며 망연자실했다.

군경은 검문 소홀과 공조체제 미비로 무장탈영병이 서울 한복판까지 들어오도록 방치했다. 서울에서도 늑장출동 등 허술한 상황대처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 참사를 불렀다.

국방부는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15사단장인 김현태 소장(갑종 157기)을 보직해임하고 사단 참모장도 군단 징계위에 회부했다. 임 일병이 소속돼 있던 전차 중대의 중대장 조한옥 대위(31· 3사관 4기)와 일직사관 등 5명은 구속됐다. 검문소 관리 등 위수책임을 맡고 있던 5군단 헌병대장도 보직해임 됐다.

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청은 여관구 서울경찰청장(57)을 서면경고하고, 경비과장 이재운 총경(57) 등 2명을 직위해제하는 등 관련자 8명을 문책했다. 일선 경찰서 상황실장 등 3명도 징계를 피해가지 못했다. 임 일병은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임채성 일병은 누구

임채성 일병은 전북 정읍에서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1992년 2월 정읍 태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고교 시절 유기정학을 3번이나 당했다. 졸업 후 하사관학교 진학을 조건으로 군 장학금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고교재학 때부터 사귀던 애인과 동거를 한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 가족들의 반대로 헤어지기도 했다.

같은 해 7월 친구들과 어울려 서울에 놀러왔다가 용돈이 떨어지자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뜯다 구속되기도 했다. 폭력전과 3범이다.

8월에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 있는 육군하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임 일병은 군에 들어와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제 멋대로 행동했다. 하사관학교 교육중인 11월 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탈영했다. 아버지의 설득으로 자수해 육군군법회의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이등병으로 강등됐다.


군은 문제 사병인 임 일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전방부대에 배치한 것 자체가 사병관리의 허점을 노출한 것이다. 임 일병은 탈영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한 달 전에 탄약고 열쇠를 입수해 매일 탄약고를 드나들며 실탄과 수류탄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G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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