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살인적인 악플에 시달리던 ‘가수 유니’ 사망사건

편견과 악플이 한 유망한 연예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가면 쓴 살인자들이었다.

1981년 5월3일,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유니의 본명은 이혜련이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지었다.

어머니가 미혼모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살았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를 듣고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과 사춘기 때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무척 힘들어 했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았다. 발산중학교 때는 전교 회장을 맡을 정도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96년 KBS 1TV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 공개 오디션에 합격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춘기 학생들이 제보한 사연을 드라마로 재구성했는데 당시 10대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으로 각광 받았다.

유니(이혜련)는 ‘공주병 스타병’ 편에서 왕공주병 학생으로 열연했다. 후에 유행어가 된 ‘공주병’도 이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진 신조어다.

유니는 예쁜 외모와 톡톡 튀는 매력, 다재다능한 능력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TV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 예능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끼를 발산했다. 대하드라마 ‘용의눈물’ KBS ‘왕과 비’(1998), 영화 ‘본 투 킬’(1996) ‘세븐틴’(1998) ‘질주’(1999), KBS2 ‘슈퍼선데이’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성인이 된 후에는 법정소송을 통해 ‘허윤’으로 개명했다. 2003년에는 긴 공백 끝에 댄스 가수로 전향해 1집 앨범 ‘가’를 발표한 후 섹시한 이미지로 변신했다.

이때부터 개명한 이름에서 따온 예명 ‘유니’로 활동했다.

유니는 섹시하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외모를 내세워 ‘섹시 콘셉트’로 이미지를 굳혀갔다. 2005년에는 2집 ‘콜 콜 콜(Call Call Call)’을 발표해 인기를 이어갔다.

도발적인 무대 매너와 관능적인 춤과 파격적인 노출 의상으로 팬에게 크게 어필했다. 2집 뮤직비디오는 온라인 뮤직비디오 인기 차트 1위에 랭크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선정성 논란으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당시 섹시 콘셉트는 일부 대중의 반감을 샀다. 이로인해 ‘노출 많이 한다’ ‘싸 보인다’는 등의 섹시 여가수의 안 좋은 이미지가 깊게 박혀버렸다.

이때부터 악플러들의 집중 표적이 된다.

도를 넘는 악플들이 멈추지 않았다. 유니를 다룬 언론 기사에는 어김없이 악플이 달렸다. 성형 의혹부터 음악보다 몸매와 노출로 승부한다는 등 수많은 악플이 그녀를 괴롭혔다.

이 중 세인의 관심이 된 것이 성형이다. 어린 시절 유니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니의 아역배우 시절 사진까지 가져와 코와 가슴 등을 수술했다며 성형에 관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퍼부었다.

2003년 10월에는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인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출연했다.

이때 남성 게스트에게 인기투표를 진행했는데 한 표도 받지 못하자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이때부터 인터넷에는 ‘가식적인 공주병 연예인’이라고 공격성 악플이 달렸다.

유니는 2005년 4월에는 ‘콜콜콜’에 이어 힙합리듬의 발라드 ‘아버지’를 발표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없이 자란 유니에게는 더욱 애틋한 곡이었다.

4월26일에는 KBS 2TV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에 출연해 눈물로 얼룩진 가족사를 고백했다. 유니는 “불우한 내 가족사를 딛고 일어선 만큼 연예활동을 통해 주변의 불우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니의 아픈 가족사도 악플러들에게는 사냥감에 불과했다.

악플러들은 유니에게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다.

2005년 9월 MBC 추석특집 프로그램에서 스타 댄스 배틀에 유니도 출연했다. 이때 이효리와 댄스 배틀을 벌이다 쉬는 시간 둘이서 무표정으로 같이 있는 순간까지 포착해서 ‘카메라 앞에서만 친한 척’한다는 사진 때문에 선배한테 버릇없고 앞뒤 다르게 가식적이라고 비난했다.

악플러들은 유니의 미니 홈피까지 악성 댓글로 도배했다. 악플이 심해지면서 유니는 점차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3집을 준비하면서는 긴 공백기를 갖는다. 이때 미니홈피를 통해 ‘제발 욕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그만큼 악플이 두려웠던 것이다.

2007년 1월 초, 언론에는 유니가 약 2년 간의 공백기를 접고 3집 앨범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도 기사마다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악플이었다. “니가 인조인간이냐? 꼴도 보기 싫다. 나오지 마라” “또 벗게? 돈 떨어졌나보네” “재수없다” 등의 비판과 조롱 섞인 악플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여기에 또다시 상처를 받은 유니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하나님 오늘도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세요” “악플은 제가 상처 받는답니다” 등의 글을 남겼다.

당시 소속사 관계자는 “유니가 22개월 만에 컴백한다는 보도가 나간 후 자기 기사를 보며 댓글로 인해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었다. 소속사에서도 ‘신경 쓰지 마라. 악플도 관심의 표현이 아니겠느냐’며 위로하고 다독거려줬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3집 앨범은 유작이 되고 말았다.

유니는 3집 ‘솔로 판타지’를 발표한 후 지상파TV 가요프로그램과 음악전문채널 등을 통한 본격 컴백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루 앞둔 2007년 1월21일 낮 12시50분쯤 인천시 서구 마전동 자택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로 외할머니에게 발견됐다.

결국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녀의 나이 26세였다.

외할머니는 경찰에서 “다른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갔다가 혼자 먼저 집에 돌아와 보니 손녀가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유니가 세상을 떠난 후 고인의 모친은 한 방송에서 “내성적인 성격인데 그러지 않아 보이려고 상처를 안으로 눌렀던 것 같다. 마음이 여린 아이였는데 강한 척 이겨내려 했으니 견디기 더 힘들어했다. 착한 아이다. 나쁘게 보지 말았으면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니는 죽어서도 외로웠다.

그녀의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이 많지 않았다. 생전 고인과 친분이 있던 몇몇 가수들이 조문했을 뿐 동료 가수들 대부분은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드라마나 예능에서 인연이 됐던 배우들과 개그맨들이 고인을 잊지 않고 찾아줘 외로움이 덜했다.

연예계에서는 악플이 달릴 것을 우려한 동료 가수들이 빈소를 찾지 않았다고 회자됐다. 가수 김진표는 유니의 빈소에 조문을 오지 않은 가수 협회나 후배 가수들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유니의 유해는 현재 경기도 안성의 유토피아 추모관에 원래 이름이었던 ‘이혜련’으로 안치돼 있다. 네티즌들은 “악플로 인해 더 이상 비극적인 죽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후에도 악플은 연예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한편, 유니는 서울갈현초등학교, 발산중학교, 일산동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