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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악플에 시달리던 ‘가수 유니’ 사망사건


2007년 1월 21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전해진 비보는 대한민국 연예계와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촉망받던 가수 유니(본명 이혜련·허윤)가 26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3집 앨범 발표와 뮤직비디오 촬영을 단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대중 앞에선 당당하고 화려했던 ‘섹시 스타’였으나, 무대 뒤에선 악플러들의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에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외로움만이 아니었다.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독설을 내뱉은 수많은 ‘얼굴 없는 살인자들’이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선 어린 시절

유니의 삶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1981년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야 했던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가족의 대화를 엿듣고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된다.

‘아빠 없는 아이’라는 낙인은 사춘기 소녀에게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으나, 그녀는 엇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중학교 시절 전교 회장을 맡을 정도로 모범적이었고, 자신을 향한 편견을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려 애썼다.

1996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아역 배우로 데뷔한 그녀는 톡톡 튀는 매력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첫 역할이었던 ‘왕공주병 학생’ 이미지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대중은 배역과 실제 인물을 혼동했고, 어린 나이의 그녀에게 ‘싸가지 없다’거나 ‘가식적이다’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영화 ‘세븐틴’ 출연 이후 쏟아진 폭언과 살해 협박은 미성년자였던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섹시 가수로의 변신, 그리고 시작된 악플러들의 사냥

성인이 된 후, 그녀는 ‘허윤’으로 개명하고 2003년 댄스 가수 ‘유니’로 다시 무대에 섰다. 격렬한 안무 중에도 라이브를 고집할 만큼 열정적이었으나, 세상은 그녀의 노력을 보지 않았다. 섹시 콘셉트를 내세운 2집 활동 시기, 악플은 광기로 변했다. 성형 의혹부터 입에 담기 힘든 인신공격, ‘싸 보인다’는 식의 비하 발언이 쏟아졌다.

가족사마저 사냥감이 되었다. 미혼모의 딸이라는 아픈 고백을 담은 곡 ‘아버지’를 발표하고 눈물로 진심을 전했을 때조차, 악플러들은 “가식적이다”, “동정심 유발이다”라며 비수를 꽂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잠시 굳은 표정이 포착되면 ‘선배에게 버릇없는 후배’라는 낙인을 찍었고, 그녀의 개인 미니홈피는 욕설과 조롱으로 도배되었다. 그녀는 “제발 욕하지 말아 달라”, “하나님, 흔들리지 않게 지켜달라”며 애절하게 호소했지만, 가면 쓴 살인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외침을 외면한 차가운 시선

2년의 공백을 깨고 준비한 3집 컴백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돈 떨어졌냐”, “인조인간 나오지 마라”는 악플이 또다시 폭주했다. 결국 그녀는 무너졌다. 사후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평소 술 한 잔 못 마시는 내성적이고 여린 성격이었으며,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당시 외할머니는 경찰에서 “다른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갔다가 혼자 먼저 집에 돌아와 보니 손녀가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유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어머니는 한 방송에서 “내성적인 성격인데 그러지 않아 보이려고 상처를 안으로 눌렀던 것 같다. 마음이 여린 아이였는데 강한 척 이겨내려 했으니 견디기 더 힘들어했다. 착한 아이다. 나쁘게 보지 말았으면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유니는 마지막 길조차 쓸쓸했다. 동료 가수들은 악플러들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 빈소 찾기를 꺼렸고, 몇몇 의리 있는 동료들만이 자리를 지켰다. 김진표 등 일부 동료들이 연예계의 냉정한 세태를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한 소중한 생명이 꺾인 뒤였다.

그녀가 직접 작사한 유작 ‘내 맘속의 빈자리’에는 “외로운 세상 속에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아”라는 처절한 고독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유니의 죽음은 대한민국 사회에 ‘악플’이라는 사회적 질병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선플 운동이 시작되고 포털 사이트의 댓글 정책이 변화하는 등 자정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익명의 그늘 아래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모는 언어의 칼춤은 멈추지 않고 있다.

유니는 단순한 섹시 가수가 아니었다. 상처 많은 가족사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을 일궈온 한 인간이었으며, 무대 위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예술가였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화려한 박수보다 따뜻한 이해의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26세의 나이로 멈춰버린 이혜련, 그녀의 비극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의 손가락 끝에 묻은 언어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흉기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악플은 제가 상처 받는답니다… 제발 욕하지 말아주세요” (생전 유니가 미니홈피에 남긴 마지막 호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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