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챔피언 최요삼 선수 사망사건
그는 링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최요삼은 1973년 10월16일 전북 정읍에서 고 최성옥씨와 오순희씨의 4남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홀어머니를 따라 상경, 영등포중학교 2학년 때 형을 따라 복싱을 시작했다. 당시 둘째형이 운동 삼아 다니던 용산의 체육관에 따라갔다가 복싱과 인연을 맺었다.
1989년 용산공고 복싱부 창단 멤버로 입학한다.
스무 살이던 1993년 7월 프로로 전향해 1994년 라이트 플라이급 신인상을 수상했다. 13연승을 달린 뒤 1995년 11월24일 한국챔피언에 도전했으나 판정패하면서 쓴잔을 맛 봤다.
그는 패배의 고통을 뼈를 깎는 듯한 자기 단련으로 이겨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신맛이 나는 껌을 씹어서 침이 나오면 뱉어낼 정도로 악착같았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1996년 일본 오사카로 날아가 안도 겐조를 꺾고 라이트 플라이급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듬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여파가 밀려오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큰형의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집까지 팔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프로복싱 인기도 급격하게 식어갔다.
가까스로 한 다단계회사의 후원을 업고 1999년 10월, 태국의 사만 소루자 투롱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판정승을 거두고 대망의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당시 사만은 44전 41승(31KO승) 1무2패의 기록으로 10차 방어에 성공했고, 이중 8차례를 KO로 장식했을 정도로 강펀치를 자랑했으나 최요삼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는 이렇게 차곡차곡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대망의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타이틀 2차 방어전에서 또 한 차례 사만과 재격돌했으나 7회 KO승을 거두며 챔피언 자리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턱뼈에 금이 가 방어전이 미뤄졌고,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2002년까지 3년간 방어전을 간신히 네 차례 치렀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와중에도 최요삼은 대전료를 모아 어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 드렸다.
2002년 7월 4차 방어전에서 멕시코 호르헤 아로세에게 5회 TKO패 당하며 챔피언 벨트를 빼앗겼다. 2004년 WBA 플라이급 타이틀 도전에 실패한 후 전격 은퇴를 선언한다.
가장 힘든 시절을 보낼 때 최요삼의 곁을 지켜준 권투인들로 인해 그는 18개월 만에 다시 링으로 돌아왔다. 2006년 12월 재기전부터 연승 행진을 벌인 끝에 2007년 9월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등극했다.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은 세계 챔피언보다 한 계단 아래인 동양챔피언과 세계챔피언의 중간 단계다. 2007년 12월25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광진구민 체육센터에서 타이틀 1차 방어전이 열렸다. 그에게는 운명을 가른 경기였다.
이날 도전자는 인도네시아 챔피언을 지낸 헤리 아몰(24‧22승7KO 3무7패). 최요삼은 그를 상대로 한 수 위의 경기를 펼치며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았다.

163cm 단신인 최요삼은 자신보다 5cm가 작은 도전자를 상대로 1회 좌우 연타를 앞세워 기선을 잡은 데 이어 2회 난타전을 벌였다. 하지만 아몰도 최요삼의 안면에 좌우 연타를 날리며 만만치 않게 저항했다.
최요삼은 3회 막판 라이트 훅으로 상대를 휘청거리게 만들었고, 10회에도 3차례 슬립 다운을 뺏는 등 경기를 일방적으로 주도했다.
하지만 12회 종료 10초 전 아몰에게 불의의 일격을 턱에 맞고 쓰러졌다. 최요삼은 일어섰으나 약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공이 울렸고, 3-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이 선언된 뒤 다시 정신을 잃었다.
곧바로 용산에 있는 순천향대병원으로 후송돼 2시간에 걸친 긴급 뇌수술을 받았다. 최요삼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있었고,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뇌사 판정을 받았다.
최 선수의 가족은 고통스런 시간 속에서도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의료진은 각막 2개, 신장 2개, 심장 등을 적출해 6명에게 새 생명을 안겼다.
비운의 복서 최요삼은 2008년 1월3일, 35세로 눈을 감았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부친의 음력 사망일과 같다. 당초 유족은 부친의 기일(忌日)을 피하기 위해 뇌사판정을 미뤘지만 장기기증과 제사를 함께 지내기 위해 사망일을 맞췄다. 최 선수의 유해는 경기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됐다.
최요삼은 이번 방어전 성공 후 4번째 세계 타이틀 도전을 계획 중이었다. 그는 팬들이 떠난 한국 복싱을 다시 일으키겠다며 링 위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통산 전적은 33승(19KO) 5패.
비록 최요삼은 링에서 유명을 달리했으나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챔피언’으로 남았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남은 인생, 매 게임 마지막 시합이라 생각하고 벼랑 끝에 몰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오늘이 마지막 운동이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으로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복싱계는 한국 복싱 최대 참사인 1982년 김득구 사망 악몽이 재발되자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권투인들은 최요삼이 쓰러진 뒤 응급처치가 늦어져 숨졌다고 주장하며 한국권투위원회(KBC)에 선수 건강보호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구급차에 같이 동승한 이동포 트레이너는 구급차 내에 산소호흡기가 재대로 작동하지 않아 충분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뇌압을 낮추는 약품도 구비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회고했다.

또한 뇌전문 의사가 아닌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동행 했다고 하면서 권투가 아무리 주먹으로 하는 운동이라지만 모든 행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듯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도 격투기 선수들을 위한 응급시설과 메디컬 테스트의 부실함을 지적했다. 최 선수의 죽음은 사회 전반의 응급 의료시설이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됐다.
2009년 1월에 발매된 힙합 그룹 리쌍의 앨범 백아절현에 수록된 <챔피언>은 최요삼 선수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리쌍의 멤버 개리는 평소 최요삼 선수와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었다.
이 곡은 그가 살았던 치열한 삶과 그를 지켜주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한 안타까운 차분한 멜로디와 개리 특유의 랩이 조화를 이뤘다. 리쌍의 대표 객원 보컬인 정인이 피처링에 참여했다.
고인을 기리는 차원에서 방송 활동을 하지 않고, 앨범만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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