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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감염돼 사망한 연예인들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끝없이 창궐하고 있다.

문명의 눈부신 발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린다.

의학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약물 남용 등의 틈을 파고들며 다양한 변종의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전염병은 국내 연예계도 강타했다. 촬영 현장도 국제행사도 안전하지 않았다.

배우 김성찬은 라오스에 촬영갔다가 말라리아에 감염됐고, 오랜 무명생활에서 벗어난 배우 유동숙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가 신종플루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전두환 전문배우로 인기를 얻었던 배우 박용식은 영화 촬영 차 캄보디아를 방문했다가 유비저균에 감염돼 쓰러졌다. 국제 영화계의 거장이었던 김기덕 감독은 해외를 떠돌다가 리투아니아에서 코로나19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배우 김성찬 (말라리아)

1973년 MBC 공채 6기에 합격해 탤런트로 데뷔했는데, 이때 동기생이 임채무, 유인촌 등이다.
김씨는 개성있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주로 코믹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주요 출연작은 TV 드라마 <무풍지대> <용의 눈물> <야망의 전설> 등이 있다. 그는 많은 작품에 참여했지만 한 번도 ‘주연’을 맡지는 않았다. 만년 ‘조연’으로 그늘에 머물면서도 그 역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
1999년 9월17일, 김씨는 KBS 2TV <도전! 지구탐험대>의 외주제작사로부터 출연 섭외를 받았다.
9월20일 김성찬은 촬영팀과 함께 라오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글 풍토병인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출발 1주일 전에 항생제를 복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김성찬에게 섭외가 들어온 것은 출국 3일 전이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라오스 남부 도시 탁세에서 버스로 24시간 거리에 있는 태국-라오스 접경지역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원주민거주 지역에서도 황열,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 대한 예방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성찬은 10월1일 귀국한 후 이전의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 인하대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통해 말라리아 감염 진단을 받았다. 결국 뇌사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4주 만인 10월7일 끝내 사망했다. 향년 45세.

배우 유동숙 (신종플루)

대학 졸업 후 연극무대로 데뷔해 독립영화와 장편영화 등에 출연했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오랜기간 무명의 세월을 보내던 그녀는 2010년 영화 <심장이 뛰네>의 주연을 맡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 작품은 그해 9월 로스앤젤레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 언급상’을 받았고, 같은 달 열린 와인 컨추리 국제영화제에서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영화’로 선정된다. 부산 영화로서는 드물게 미국시장 배급이 결정되기도 했다.
같은해 10월에 열린 ‘제5회 로마국제영화제’에 특별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유동숙은 같은해 10월25일 이탈리아로 출국했다. 그러나 유동숙은 로마에서 돌아오자마자 몸에 이상이 생긴다.
처음에는 몸살 기운이 있어 피곤한가보다 했는데, 점차 증상이 심해지더니 급기햐 호흡곤란 증상까지 와서 고려대 안암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으로 옮겨질 당시 그녀는 호흡이 거의 없어 심장기능이 10% 밖에 활동하지 못해 심폐소생술을 받을 만큼 위중했다.
의료진은 당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신종플루에 의한 폐렴 호흡곤란증후군 심근염으로 진단하고 타미플루를 투여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상태가 악화되면서 입원 9일만인 11월11일 오후 10쯤 생을 마감했다. 향년 38세.

배우 박용식 (유비저균)

1967년 TBC 공채탤런트 4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TV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박용식은 전두환 집권기인 제5공화국에는 암울한 세월을 보낸다. 전두환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금지를 당해 약 5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후 ‘전두환 족쇄’가 풀렸고,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을 닮은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1991년에 KBS 대하드라마 <왕도>를 시작으로 MBC 대하드라마 <땅>(1991), 정치드라마 <제3공화국>(1993), <제4공화국>(1995) 등에서 전두환 역할로 단골 출연했다.
1991년 7월19일에는 전두환을 연희동 자택에서 만나 사과를 받아냈다.
박용식은 2010년 6월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방송 출연정지 당했던 당시의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2013년 5월 박용식은 영화 촬영 차 한 달 동안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박용식은 자신의 분량에 최선을 다했고 촬영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촬영 막바지에 설사를 하며 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박용식은 남은 분량을 마친 후 일정을 앞당겨 6월2일 귀국했다.
그러나 건강은 더욱 악화돼 경희대병원에서 치료 받는 중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다. 사망원인은 유비저균에 의한 패혈증이었다. 국내 첫 사망사례다. 향년 67세.

영화감독 김기덕 (코로나19)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30세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에 거주하면서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다.
32세 때 우연히 영화를 보며 영화에 빠져들었고 영화감독의 꿈을 꾸게 된다.
1993년에 귀국해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무단횡단>이란 시나리오로 대상을 받으면서 영화계에 정식 입문했다. 1995년 저예산 영화 <악어>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김기덕은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본상을 받으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감독상), 같은해 <빈 집>으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2011년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상,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최고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으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본상을 받은 것은 김기덕이 유일하다. 이밖에도 수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실적이 있다.
그러나 2018년 미투 논란에 휩싸이며 가해자로 지목됐고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여배우와 스태프를 성적으로 희롱하거나 추행하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김기덕은 해외로 출국한 후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배우와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김기덕은 귀국하지 않고 평소 친분이 있었던 영화인들이 있던 러시아 주변국들에 머물며 현지 배우 및 스태프들과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2020년 12월5일 발트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했다. 그는 라트비아 북부 휴양 도시 유르밀라에 저택을 구입하고 라트비아 영주권을 획득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6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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