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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후 시신을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한 연예인들

소설 <동의보감>에서 스승 유의태는 제자인 허준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

반위(위암)에 걸린 그는 허준이 자신의 신체를 해부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마지막으로 세상 모든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달라고 당부한다.

오늘날 ‘시신기증’은 의대생들의 의학 교육과 연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신 해부를 통해 의사들은 병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고 오진율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시신기증을 위해서는 본인의 유언이나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만큼 세상을 위해 마지막으로 내리는 고귀한 결단이다.

연예인 중에서 사망한 후 시신을 기증한 사람은 3명인데, 탤런트 김순철, 개그맨 김형곤, 코미디언 쟈니윤이다.

탤런트 김순철

서라벌 예대를 졸업한 김순철은 1957년 KBS 탤런트 공채 1기로 방송에 입문한다. 주로 소박하고 개성 있는 서민 연기로 인기를 얻었다.
1960년대 KBS 드라마 <나는 곰이다>로 얼굴을 알린 그는 KBS , <빛가족>, TBC <여보 정선달> 등의 드라마에서 열연했다. 범죄드라마 <수사반장>에서는 범인 역을 자주 맡기도 했다.
김순철은 1998년 KBS <용의 눈물>에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오랫동안 당뇨병과 이로 인한 합병증을 앓아오다 2004년 사망한다. 향년 67세.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순철은 평소 자신의 몸을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유족은 그의 유언대로 서울대병원에 시신을 기증했다.
고인의 딸은 “아버님께서는 예전부터 ‘우리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며 장기에 이어 시신까지 모두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며 “타계하시기 직전 이 같은 다짐을 다시 확인해주셨다”고 말했다.

개그맨 김형곤

국내 풍자 개그의 대부인 김형곤은 동국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2학년 때인 1980년, 제2회 TBC 개그콘테스트에 장두석과 함께 은상을 받으면서 대학생 개그맨 시대를 열었다.
1982년 KBS 2TV <젊음의 행진>에서 요리연구가 이종임씨의 말투를 흉내 낸 ‘워낙 비싸요’ 등의 유행어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형곤은 1980년대 암울했던 시절 KBS <유머 1번지>, <유머극장>, <한바탕 웃음으로> 등에서 ‘회장님, 회장님, 우리회장님’ ‘꽁자 가라사대’ 등 시사 풍자코미디를 선보였다.
당시에는 주로 몸을 이용해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대부분이었으나 김형곤은 ‘시사 풍자 개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정치적 사건이나 비리, 부정부패 등을 그만의 특유한 해학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풍자해 단순한 웃음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1987년 당시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던 <유머 1번지>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에서 다양한 정치‧사회 문제를 이슈화시켰다.
하지만, 거침없는 시사 풍자는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미움을 받아, 중간에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김형곤은 2000년대 들어 건강 다이어트를 하며 체중 감량에 나선다.
2006년 3월11일 오전 9시쯤, 그는 평소처럼 자택인근인 서울 성동구 자양동의 한 헬스클럽을 찾았다. 얼마 후 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발견된다. 화장실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출혈이 심했다. 인근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숨이 멎은 상태였다. 사인은 돌연사로 판명났는데, 스트레스 등 복합적 원인에 의한 것으로 판단됐다. 향년 46세.
시신은 생전에 서약한 고인의 뜻에 따라 카톨릭의대에 연구용으로 기증됐다.

코미디언 자니윤

자니윤(본명 윤종승)은 1936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1959년 국내에서 방송인으로 데뷔한 후 MC 생활을 하다가 1962년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제대 후에도 미국에 정착해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다.
1964년부터 뉴욕에서 무명 MC 겸 코미디언으로 활동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탠드업 코미디 양식을 개발한다. 1973년 뉴욕 최고연예인상을 받았다. 미국 최고의 토크쇼였던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 아시아인 최초로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NBC 방송국과 전속계약을 맺고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면서 블랙 코미디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해 많은 돈을 벌었다.
1989년에 귀국해 KBS2 토크쇼 프로그램인 ‘자니윤 쇼’를 보조 MC인 조영남과 진행하면서 최초의 미국식 토크쇼를 선보였다. 이를 계기로 방송인 주병진, 이홍렬, 서세원 등 스타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SBS 개국과 함께 ‘자니윤 이야기 쇼’를 진행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한국관광공사 상임이사에 임명됐고, 임기 만료를 앞둔 2016년 4월13일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헌팅턴 요양원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냈는데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2020년 3월8일 새벽 LA의 알함브라 메디컬센터에서 세상을 떠난다. 향년 83세. 시신은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메디컬센터에 기증됐다.

탤런트 남일우‧김용림 부부, 가수 김C

생존 연예인 중에서는 중견탤런트 남일우‧김용림 부부가 사후 시신기증을 서약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두 사람은 생명나눔실천본부의 회원으로 2005년 사후 시신기증에 동참하기로 했다.
1958년과 1961년 각각 KBS 성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남일우와 김용림은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이자 연기자 가족이다. 아들이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영남이 역의 남성진이며, 며느리가 복길이 역을 맡았던 김지영이다.

록밴드 ‘뜨거운 남자’의 멤버 가수 김C(본명 김대원)도 사후 시신기증에 서약했다. 그는 2006년 6월20일에 방송된 SBS <김용만의 TV종합병원>에 출연해 장기와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장기기증증을 공개했다.

시신 기증 처리과정

먼저 해부에 앞서 방부처리 과정을 거친다. 해부학 실습 과정에 시신이 곧바로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 시체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바이러스나 병원균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다. 방부처리에는 3개월 정도가 걸린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병원 내 해부학교실에서 관리하는 ‘시신보관소’에 안치된다. 의료진은 시신의 상태에 따라 학생 교육용으로 쓸지, 새로운 수술법 개발을 위한 연구용으로 쓸지를 결정한다. 시신은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 해부학 연구에 사용한다.

의학적 용도로 활용이 끝난 시신은 미리 준비해 놓은 관과 수의를 입혀 화장 처리한다. 입관과 화장시 유족은 초청되지 않는다. 만약 유족이 화장한 유골을 원할 때는 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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