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GP사건

살릴 수 있는 부상병까지 죽었다

530GP 사건으로 8명의 장병이 숨졌다. 이중 최소 2명은 후송만 빨랐어도 살릴 수가 있었다.

연천 530GP에서 국군 양주 병원까지는 평소 1시간 이내에 후송이 가능한데, 그날은 부상병 후송을 무려 3시간30분(유족들 추정 사고발생시간 01시10분이면 4시간40분정도) 정도 지연되면서 사망자가 더 늘어났다.

특히 고 이태련 상병과 고 이건욱 상병의 부모는 군의 늦장 후송에 땅을 치고 통곡했다. 군 당국이 이건욱 상병의 사망 일시를 조작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군 수사발표에 따라 김동민 일병을 체포한 것은 6월19일 02시53분이다. 이때는 무장해제를 시킨 상태였다. 6군단 헌병대의 수사기록을 보더라도 구급차가 7통문에 도착한 시간은 02시59분이며, 7통문 개방 후 구급차와 경호팀이 통과한 시간은 46분 후인 03시45분이다.

양주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05시10분으로 부상자 후송에 3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여기서 ‘7통문(DMZ 출입문)’은 후방에서 530GP가 있는 DMZ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철책선이다. 7통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2개의 열쇠가 있어야 한다.

GP 상황실에 하나를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GP장이 갖고 있었다. 군 당국은 DMZ 출입규정을 준수한다며 7통문을 곧바로 열지 않았다.

군은 “통문 안쪽 DMZ 출입시 5인 이상 경호인원의 엄호하에 이동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구급차 도착시까지는 적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이건 변명에 불과하다. 내무실 총기사고로 김동민 일병을 체포한 시간이 02시53분이었고, 구급차가 7통문에 도착한 것은 02시59분이다.

이때는 이미 ‘적 도발’이 아니라 ‘내무실 사고’로 상황전파가 됐다. 적의 위협이 없는 상태였고, 부상병의 생사가 위급한 것을 감안하면 곧바로 통문을 열고 부상병을 후송했어야 한다. ‘경계병 미도착’은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2008년 11월23일 새벽 1시50분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육군 6사단 예하 181GP 내무실에서 수류탄 1발이 터져 허모 병장(21)과 이모 상병(21) 등 5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이때 부상병들은 사건 발생 2시간 내에 헬리콥터로 긴급 후송돼 응급조치를 받음으로써 단 한명도 사망하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이태련 상병의 유족들은 지금도 이 생각만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이 상병은 좌측 대퇴부(허벅지)에 직경 22mm(2.2cm) 정도되는 작은 상처만 있는데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었다.

군은 왜 부상자 후송을 머뭇거렸을까?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유족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언급한다. 사건을 은폐 조작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했다는 것과 북한의 추가 공격을 우려해 날이 밝을 때까지 GP 진입을 보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530GP 상황병 김영진 상병의 진술서를 보면 “총기를 다 거두고 후송이 끝난 상황에서 TOD 장비로 530GP 주변과 적 지형을 관찰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오주석 81연대장은 “적 도발 상황이므로 투입되는 사병들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진술을 했다. 여러 근거와 정황을 보면 ‘내무실 총기사고’가 아니라 ‘북한군 공격’에 무게가 실린다.

군 수사기관 발표의 신빙성에도 의문이 든다. 앞서 6군단 헌병대 수사기록에는 “04시25분에 부상자 3명을 앰뷸런스(구급차)로 후송”했고, 이건욱 상병의 사망시간대는 양주병원에 후송된 지 55분 후인 06시05분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530GP 상황병인 김영진 상병의 진술서를 보면 “앰뷸런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전화독촉한 시간이 04시30분”이다. 군 수사기관이 이미 “후송했다”고 말한 시간에 530GP에서는 “구급차를 독촉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건욱 상병의 사망시간대를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아래 81연대 의무중대 일지를 보면 이건욱 상병은 양주병원에 후송된 후 사망된 것이 아니라 “후송 도중에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군은 왜 이 상병의 사망시간대를 조작했을까.

이에 대해 유족들은 “건욱이는 좌측 대퇴부와 우측 어깨에 칼로 짼 듯한 찢어진상처(10cm 정도)를 입었다. 이 상처는 무기가 무엇인지 규명할 중요한 단서인데, 증거인멸을 위해 봉합했다.

사망자의 상처를 봉합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부상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봉합했다고 해야했다. 그래서 사망시간을 조작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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