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TV 서프라이즈’ 배우 여재구 사망사건
그는 죽은 뒤에야 비로소 유명해진 배우였다.
1970년 9월22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수원농생명과학고를 졸업하고 22세 때인 1992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94년부터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지금까지 영화는 <태백산맥>, <신라의 달밤>에 출연했다.
안방극장에서도 시청자들과 만났다. MBC 월화드라마 <허준>,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KBS 주말연속극 <애정의 조건>에 나왔다.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무명의 일본 장수 역할을 맡았다. MBC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통대선거 반대집회 연행자들을 임시적으로 관리하는 경찰서 유치장 경찰관역을 소화했다.
이외에도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 SBS 드라마 스페셜 <외과의사 봉달희>, KBS 일일연속극 <하늘만큼 땅만큼>, MBC 월화드라마 <히트> 등에 출연했다.
극중 역할은 학대당한 아이의 아버지, 영화 관계자, 교도관 등이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큰 얻었으나 정작 배우인 ‘여재구’가 누구였고,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맡은 배역이 주연이나 조연이 아닌 ‘단역’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나마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것은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재연 프로그램에서였다. 여재구는 SBS <솔로몬의 선택>과 MBC 장수 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 장기간 출연했다.
이중 ‘서프라이즈’에 4년 정도 출연하며 다양한 배역을 맡았다.
방송작가 최경씨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TV에 재연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 다큐멘터리에서였다. 사건이나 상황을 좀 더 현실감 있게 설명하기 위해 배우가 실제 인물처럼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재연기법은 <경찰청 사람들> <긴급구조 119> <실화극장 죄와 벌> 등으로 인기를 모았다.
그는 또 “재연배우를 캐스팅할 때 고려하는 사항 중 하나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여야 한다. 실제 사건을 현실감 있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재연프로그램에서 묵묵히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말한다.
시청자들에겐 드라마와는 또 다른 공감과 재미를 선사했지만 정작 연기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재연 배우’라는 낙인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재연 배우들은 출연료에서 울고 편견에서 가슴을 쳐야만 했다.
배우에게는 등급이 있다. 등급제로 출연료가 결정되는데 보통 1~18등급으로 나뉜다. 5등급까지는 아역 탤런트들이고, 일반 연기자는 6등급부터 시작한다.
방송국 공채 탤런트들은 일괄적으로 6등급으로 등록돼 연기를 시작한다. 최상위인 18등급 이상의 금액을 받는 톱 배우들은 ‘자유계약자’가 된다. 이쯤되면 등급을 벗어나 고액의 출연료를 받을 수가 있다.
등급을 결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활동 경력에 따라 한 등급씩 올라간다. 프로그램 편성과 방송 출연 분량에 따라 출연료에 차등이 생긴다. 활동이 미비하거나 인기가 없으면 등급을 올리기 힘들다.
배우 등급제는 수많은 드라마를 급하게 제작해야 하는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편리한 제도였다.
그나마 등급제 적용을 받으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재연 배우들 중에는 등급제 적용을 받지 못하고 등급제 최저 출연료보다 적은 액수를 받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도 허다하다.
여재구가 활동하던 시기로 보면, 재연프로그램에서 주요배역을 맡은 등급이 높은 배우들은 회당 30~40만 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았다. 여기에서 출연을 주선해준 곳에 30% 정도의 수수료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약 20만 원 뿐이다.
단역은 회당 10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한 달에 10번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해도 수수료를 떼면 수입이 100만원도 안 된다. 투잡이 아니라 연기를 전업으로 삼는 배우라면 이 수입으로는 생계가 막막했던 것이다.
낮은 출연료에 더해 재연 배우들을 더욱 서럽게 만드는 것은 ‘편견’이다. 재연 배우들에게는 ‘정극 배우’에 비해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감이 존재했다. 지금도 ‘재연 배우=급 낮은 배우’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때문에 재연 배우에게 정극 영화나 드라마 출연은 하늘의 별따기다. 연기력이 있어도 ‘재연’이라는 이유로 정극에서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다. 재연배우가 정극에 출연할 경우 시청자들의 극에 대한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여재구는 연극에서 잔뼈가 굵었고 연기가 좋아 다른 길을 돌아볼 줄 몰랐다. 그래서 연기라면, 그것이 어떤 프로그램이든 상관없이 몸을 던졌다. 하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잘나가는 주연도, 빛나는 조연도 될 수 없었다. 그나마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 것은 재연프로그램에서 뿐이었다. 그래서 ‘배우 여재구’ 앞에는 늘 ‘재연’이란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연기자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발을 내디뎠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는 지난 2007년 5월28일 오후 4시25분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집 뒤뜰에 목을 맨 채 숨져있는 것을 친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여재구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지만 사건 당시 어머니는 집을 비운 상태였다. 그는 이렇게 38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평소 우울증에 시달렸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말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극심한 생활고와 무명의 설움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간 것이다. 스타만 존중받는 연예계의 정글법칙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그가 죽고 난 후 이름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랐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팬들은 뒤늦게 팬카페를 만들고 그를 애도했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고 죽은 후에야 비로소 이름 석자를 알리게 된 것이다.
여재구의 죽음은 재연 배우들이 겪는 낮은 처우와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한동안 ‘재연 배우’의 열악한 현실을 조명했지만 그때 잠시 뿐이었고 관심은 곧 사그라들었다.
고인의 시신은 수원의 한 화장터에서 화장한 후 유해는 ‘유택 공원’이라는 인근 동산에 뿌려졌다. 김민진, 이정재, 박재현 등 후배 배우들이 마지막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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