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방송 김은정 아나운서 실종사건
1991년 9월21일 교통방송(TBS) 김은정 아나운서(35)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김 아나운서는 이날 오후 4시쯤 퇴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자신의 집으로 귀가했다. 밤 9시에는 집에서 나와 50여m쯤 떨어진 고모 집에 들러 저녁식사를 했다. 고모에게는 “새벽부터 있을 추석 생방송 때문에 일찍 쉬어야 겠다”고 말했다.
그런 김 아나운서는 자신의 집에 돌아온 후에 다시 외출 준비를 했다. 당일 시내 한 병원에 입원중인 친구의 병문안을 가기로 돼 있었다. 그녀는 평상복 차림이었고, 상의는 진한 쑥색 바탕에 꽃무늬 블라우스와 점퍼를 입었다. 하의는 쑥색 바지를 입었다.
핸드백 안에는 월급으로 받은 현금 100만 원이 있었다. 김 아나운서는 친구의 병문안을 가지 않았고, 그 뒤 행방불명됐다.
우리나라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날은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리는 추석과 설날 명절이다. 교통방송은 이날 특별생방송을 편성해 고향 길 운전자들에게 교통정보 등을 제공한다.
TBS는 추석 당일인 9월22일 여느 해처럼 특별생방송을 편성했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될 생방송의 진행은 김은정 아나운서가 맡기로 돼 있었다. 방송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TBS도 그만큼 분주했다.
그런데 생방송을 코앞에 두고 진행자인 김 아나운서가 출근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TBS에 재직한 후 단 한 번도 방송을 펑크 낸 적이 없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담당자들이 이리저리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TBS는 급히 새로운 진행자로 대체해 생방송을 이어갔다. 김 아나운서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가족들과 TBS 동료들은 답답할 뿐이었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일시적 방황’으로 생각했으나, 3일째 되던 날에는 신변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경찰에는 ‘비공개 수사’를 요청했다.
김 아나운서의 언니는 매일 오전 7시쯤 TBS로 출근해 동생의 자리를 지켰다. 주인 없는 책상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일일이 받으며 애타게 동생의 소식을 기다렸다. 단서가 될 만한 연락을 기다렸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하는 절망감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막연한 기다림의 나날이었고, 가족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경북 영주 출신인 김은정 아나운서는 의사 집안에서 1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78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동아방송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다음해인 1979년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두 달 만에 파경을 맞았다. 신혼의 단꿈에서 깨기도 전에 이혼이라는 커다란 상처가 나고 말았다. 김 아나운서는 이후 창천동에서 혼자 살며 방송 활동에 전념했다.
1984년에는 KBS로 이직해서 5년 동안 라디오 리포터로 일했고, 1989년 TBS가 개국하면서 이직했다. 실종 전 까지 ‘안녕하십니까. TBS와 함께의 김은정입니다’ 등의 진행을 맡았다.
경찰은 김 아나운서의 실종 이후 가족, 지인, 직장 동료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직장 동료들에게서 비관적인 얘기를 했었다는 것을 파악했다.
김 아나운서가 그해 4월15일 프로그램 개편 이전까지는 ‘교통시대’ 공동MC 등 비교적 비중 있는 프로그램을 맡았으나 개편이후에는 정규 프로그램 없이 단막뉴스만 간헐적으로 맡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후배들 보기 부끄럽다” “창피해서 죽겠다” “수면제를 사러 약국에 갔는데 알아보고 팔지 않더라” “전동차에 뛰어들어 죽고 싶지만 처참한 모습이 보도될까봐 두려워 못 하겠다” 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동료들은 자살 가능성에 대해서는 희박하다고 말했다.
김 아나운서가 직장이나 결혼문제로 고민한 것은 사실이지만 1990년 가을 프로그램 개편 당시 보다 1991년 봄 개편 때는 오히려 사내입지가 더 강화했다는 것이 이유다.
김 아나운서가 실종 다음날 ‘추석 특별생방송’ 진행을 맡는 등 직장문제로 인한 잠적이나 자살 등은 설득력이 약했다.
경찰은 다각도로 수사를 펼쳤다. 김 아나운서가 잠적이나 은둔해 있을 가능성도 있어 전국의 수녀원, 기도원, 사찰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해외 도피 가능성에 따른 출국자 명단도 조사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또 납치나 인신매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낙도와 유흥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으나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뺑소니 차량이나 강도·피살 가능성도 높게 보고 서울외곽 야산을 수색했으나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찰은 김 아나운서의 방에서 ‘Lee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메모를 발견했다.
그녀가 실종되기 전 연세대 구내교회에 다니는 ‘리’라는 남자와 교제해온 것도 확인했다. 경찰은 김 아나운서의 실종과 ‘리’라는 남성과 관계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였으나 특이점은 없었다.
김 아나운서의 실종 상태가 길어지면서 온갖 추측만 무성했다. 당초 정신적 압박 등으로 인한 일시적 도피행각으로 여겨졌던 그녀의 실종은 시간이 흐를수록 범죄와 연계된 납치·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비공개로 수사하던 경찰은 11월10일부터는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전단지 10여만 장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다. 실종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가족들의 걱정과 고통도 그만큼 커졌다.
김 아나운서의 어머니는 딸의 생사라도 알고 싶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일본인 역술가를 찾아갔다. 그랬더니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는 실낱 같은 기대를 걸고 딸의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의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김은정 아나운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새로운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실종 당시 김 아나운서는 키 155cm의 작은 체구에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
1.이상한 외출
김은정 아나운서는 9월22일 추석날 새벽 생방송 진행을 맡기로 돼 있었다. 밤 9시쯤 고모집을 나설 때도 “내일 새벽부터 있을 생방송 때문에 일찍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가 다시 외출 준비를 하고 밤늦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당일 친구의 병문안이 예정돼 있었으나 병원에 간 것도 아니다.
김 아나운서의 갑작스런 외출은 누구를 만나기 위한 것일까. 또 예정된 외출이었는지, 아니면 갑작스런 외출이었는지가 불분명하다.
2.현금 100만원의 용도
김 아나운서는 실종 당시 월급으로 받은 현금 100만 원을 갖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것 때문에 김 아나운서의 잠적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 아나운서가 어떤 용도로 현금을 갖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의도된 잠적’과 연결 짓기에는 액수가 너무 적다.
3.왜 흔적이 없을까
경찰은 김 아나운서의 ‘가출신고’가 접수된 후 다각도로 수사를 벌였다. 치정관계 은신, 교통사고, 강도 살인, 납치·인신매매, 자진 도피 등이다.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자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제보를 기다렸으나 신빙성 있는 것이 없었다. 정말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 잠적했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을 수가 없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범죄에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1980년~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 사회에는 부녀자 납치나 인신매매가 횡행했다.
인신매매단은 부녀자를 승합차로 납치해 금품을 빼앗거나 유흥업소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은 귀가를 서두르고 검은 봉고차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던 시기였다.
어쩌면 김 아나운서도 인신매매단의 희생양이 됐을 수 있다. 강도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확률은 낮다. 우발적인 살인의 경우 증거를 완전히 인멸한 채 사체 처리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 김 아나운서를 계획적으로 불러내 살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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