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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유체이탈설’ 가수 이원진 사망사건


그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원진은 1971년 3월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 명지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음대에 지원했으나 떨어지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1년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경영학부에 입학했다.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에 대해 생전 인터뷰에서 “다른 것을 하면서는 음악을 할 수 있지만 음악을 하면서는 다른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1년 만에 중퇴하고 귀국을 선택한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강권에 의해서였지만, 미국에서 1년간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어느새 음악이 자신의 전부라는 깨닫게 되고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94년 류금덕과 함께 부른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를 발표하고 가수로 데뷔했다. 이 곡은 KBS <가요톱10>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솔로 앨범 <독백>과 <늦었지만>을 발표해 연이어 히트시켰다.

1996년 대중음악을 공부한다며 다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7년 3월12일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사망원인은 여러 의혹을 증폭시켰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범죄 집단에 연루됐다거나, 음반계약과 관련해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등의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는 지금까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교통사고 설’과 ‘유체이탈 설’이 유력하다. ‘교통사고’는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사망했는지가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유체이탈 설’은 좀더 구체적이다.

이원진은 평소 요가와 명상에 심취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망 당일 LA 숙소에서 유체이탈을 통해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가 구토를 했고, 이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 했다는 것이다.

SBS <토요미스테리 극장> 44화에서도 이같은 내용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정황상 후자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이원진의 대표곡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는 이정봉, 이수영, 레이저본 등 여러 동료 가수들이 리메이크 할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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