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사건

이현부 육군 제7기동군단장 헬기 추락 사망사건

1943년에 태어나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20기로 입교했다. 육사 졸업 때에는 학업성적과 리더십이 가장 우수한 생도가 받는 대표 화랑상을 수상했다.

1964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기사)으로 자대 배치받았다. 수기사에서 대대장-연대장-사단장을 지내는 등 기계화부대 작전의 1인자로 통했다.

대대장 시절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부하 병사가 사단 보급부대에 보급품을 수령하러 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관내에 있는 책방에 들렀다. 그는 보급부대에서 수령한 보급품을 책방의 모퉁이에다 놓고 책을 골랐다.

얼마 후 보급품(염화칼륨+화학품)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불이나 책방이 완전히 전소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당시 화재로 인해 총 400여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해당 병사는 손해배상을 하지 못하면 영창에 가야했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이때 이 병사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대대장인 이현부 중령이었다. 그는 “병사가 방화도 아니고 실화도 아닌데 손해 변상을 못하면 전과자가 된다”며 고민을 거듭하다 사재를 털어 변상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 대대장의 월급은 약 20만 원, 이를 감안하면 이 중령은 부하 병사를 위해 자신의 2년치 월급을 모두 털었던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아픔을 겪었다. 이 중령은 1973년 결혼했으나 74년과 76년에 얻은 두 아들을 돌이 되기 전에 연이어 잃었다. 1981년에 늦둥이 딸을 낳아 애지중지했다. 그는 어렵게 얻은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외동딸과의 통화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수기사(맹호부대) 사단장 시절에는 가족과 떨어져 관사에서 혼자 생활했다. 주말마다 부인과 딸이 관사로 찾아왔지만 이 소장은 부하 가족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외식을 위해 밖으로 나갈 때도 본인이 직접 개인 승용차를 운전해서 허름한 시골 식당을 찾아갔다.

이현부 소장은 1991년 말 육사 20기 출신 중 안병호 수방사령관과 함께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중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제7기동군단장으로 부임했다.

1992년 2월14일 오전 9시쯤, 이 군단장은 참모들과 함께 육군 204항공대 소속 UH-1H 헬기를 타고 경기도 장호원을 출발, 작전통제부대인 포항의 해병 부대 순시에 나섰다.

군수참모 이원일 대령은 군단장에게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주변의 지형을 설명했고, 모두들 이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전 9시45분쯤, 헬기는 경북 선산군 장천면 상림리 마을 뒤편에 있는 삼정산 7부 능선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헬기가 요동을 쳤다. 뒷날개가 떨어져 나가더니 균형을 잃고 급강하했다.

당혹과 공포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군단장은 “부락을 피하라”고 지시했고, 정조종사 이지성 대위는 침착하게 부조종사 이수호 대위에게 각 관제소에 긴급상황을 알리도록 조처했다.

이지성 대위는 좌측으로 쏠리며 급강하하는 헬기가 부락을 피하도록 조종간을 잡고 안간힘을 썼다. 참모들과 당번병들은 군단장을 살리기 위해 이 중장의 몸을 겹겹이 껴안았다. 결국 헬기는 인근 과수원으로 추락했다.

사고 순간을 목격한 마을주민들은 “과수원에서 일하는데 갑자기 ‘퍽’하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헬기가 중심을 잃고 꼬리 부분을 아래로 한 채 빙글빙글 돌면서 산쪽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곧바로 추락 현장으로 뛰어올라갔다.

사고 당시 배터리의 전원을 떼어내려다 우측 문밖으로 튕겨져 나온 이수호 대위는 주민들이 나타나자 “빨리 배터리를 제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기체가 폭발한다. 군단장을 살려야 한다”고 절규한 후 실신했다.

주민들은 부상자 3명을 업고 마을로 내려와 면사무소 관용차와 예비군 중대장의 승용차에 싣고 병원으로 후송했다.

사고 당시 헬기는 기체 뒷부분이 크게 부서졌으나 폭파되지 않았다. 추락 현장은 소나무 잣나무 등 잡목이 우거진 경사 40도의 산중턱으로 헬기는 기수가 남동쪽을 향한 채 땅에 처박혀 완전히 부서졌으며 뒷부분 프로펠러는 현장에서 약 1km 떨어진 논에 떨어졌다.

이 사고로 탑승장병 10명 중 7명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조종사 뒤편 좌석에 탔던 이현부 중장(50)은 머리 부분에 심한 타박상을 입고 숨졌다. 감찰참모 노용건 중령(40)과 당번병 조규성 상병(22)은 밖으로 튀어나와 헬기 밑에 깔려 숨졌다.

끝까지 군단장을 지키려고 했던 작전참모 허정봉 대령(49), 군수참모 이원일 대령(40), 비서실장 한황진 소령(32), 부관 서상권 중위(25) 등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조종사 이지성 중위(35), 부조종사 이수호 대위(27), 헬기보조승무원 문기남 상병(22)은 부상을 입었으나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중 이지성 대위는 현장에서는 살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한 달 후 사망했다. 이 사고로 총 8명의 장병이 사망한 셈이다.

육군 사고 조사반은 “사고 원인을 기상이변에 의한 프로펠러 손상”이라고 발표했다. 순직 장병들은 영결식을 거쳐 이현부 장군은 국립서울현충원에, 다른 순직자들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고 이현부 중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이경주 여사(44)와 초등학교 4학년(11)인 딸이 있었다. 이 여사는 장례식 때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조의금 전액을 순직한 부하의 유족들에게 나눠주고 본인은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의 묘비에는 생전 유지대로 노산 이은상이 지은 ‘조국강산’의 한 구절이 새겨졌다.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 사랑 바칠 곳은 오직 여기뿐. 심장의 더운 피가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을 노래부르자.” ■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