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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문 ‘배우 박용식’ 유비저균 감염 사망사건

1946년 12월26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고를 거쳐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TBC 공채탤런트 4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TV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영화 <엄마없는 하늘아래>(1977), <단짝>(1979), <달콤한 신부들>(1989), <똑바로 살아라>(1997), <마법의 성>(2002), <투사부일체>(2006), <시선>(2014) 등에 출연했다.

TV에서도 선 굵은 연기를 펼쳤다.

KBS2 TV문학관 <신부들>(1980), <원효대사>(1986), <토지>(1987), <왕도>(1991), <찬란한여명>(1995), <용의눈물>(1996), <무인시대>(2003) 등에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이런 연기 활동으로 1974년 TBC 연기대상 우수 연기상을 수상했고, 1995년과 1996년에는 ‘제4공화국’으로 MBC 연기대상 인기상과 제3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을 수상했다.

박용식은 전두환 집권기인 제5공화국에는 암울한 세월을 보낸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방송계에는 두 가지 암묵적인 금기가 생겼다.

하나는 전씨 아내 ‘이순자’의 이름을 딴 ‘순자’라는 이름의 배역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전두환의 외모를 닮은 탤런트 ‘박용식’이었다. 1979년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박용식의 얼굴이 닮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1980년 12월25일 방영된 KBS TV문학관의 제2화 <신부들>에서 박용식은 극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단역을 맡았다. 흰머리에 안경을 낀 대머리 주례선생으로 분장하고 나왔는데, 이게 당시 방송사 고위 간부의 눈에 거슬렸다.

박용식 출연 작품들.

그가 “앞으로 출연시키지 마라”고 지시하면서 이후 박용식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면서 생계 위협을 받았고, 호구지책으로 방앗간(참기름 장사)을 운영하면서 어렵게 살아야만 했다. 이때의 절약정신이 몸에 밴 탓에 2003년에는 제40회 저축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물론 전두환이나 이순자가 직접 박용식의 출연금지를 지시한 적은 없다. 신군부 세력과 방송사의 과잉충성에서 비롯된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는 1985년 말에야 모자와 가발을 쓰는 조건으로 해금됐다. 연기활동을 재개한 이후 1988년 <손자병법>에서 진산기업 자재부장인 역을 맡으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용식에게는 ‘전두환 족쇄’가 풀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상 정치적 표현이 자유로워지자 전두환을 닮은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1991년에 KBS 대하드라마 <왕도>를 시작으로 MBC 대하드라마 <땅>(1991), 정치드라마 <제3공화국>(1993), <제4공화국>(1995) 등에서 전두환 역할로 단골 출연했다. 2013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스캔들>에서도 전두환 역으로 깜짝 출연했다.

2003년 5월 MBC <코미디 하우스> ‘삼자토론’에 박용식이 전두환 역으로 토론에 참여한다. 그는 전씨가 발언했던 ‘29만원’을 패러디하며 “본인은 29만 천 원 밖에 없어~?”라고 풍자하며 대중을 웃겼다.

1991년 7월19일 박용식은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전두환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전씨는 “박용식씨가 나 때문에 굉장히 고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한 뒤 “현직을 떠나보니 몰랐던 일이 많더라. (출연 금지는) 어처구니없는 시행착오였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보도내용 캡쳐

박용식은 2010년 6월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방송 출연정지 당했던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그는 “연기밖에 모르고 살았던 제가 출연정지를 당하니 할 일이 없었다”며 “당시 동네 선배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먹고 살아야지’라며 방앗간 기술을 가르쳐줬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그 때 당시 피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다. 그 이후로는 좋은 일은 영원히 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며 “그 이후 ‘좋은 마음에서 긴장하고 살자’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고 그 때 경험이 제 인생에 좋은 작용을 했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박용식의 딸이자 KBS 성우인 박지윤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앞서 2001년 7월부터 방영된 경인방송(iTV) 풍자시트콤 <공회장네 식구들>에서는 약간 무식하면서 매사를 저돌적으로 밀고만 가는 공 회장 역을 맡았다.

내용은 구시대 재벌상의 전형인 공 회장을 중심으로 엘리트 출신의 젊은 후처와 2남1녀 자제간 후계다툼, 기업 내 충복과 개혁세력간의 알력 등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해외유학을 다녀온 야심가 공회장의 차남 역에는 박용식의 실제 장남 박세준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박용식은 한때 자동차 도장사업체인 ‘세덴’을 운영하며 사업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60이 넘은 나이에 가발 광고 모델로 출연했는데, 특유의 전두환 톤으로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2013년 5월 박용식은 영화 촬영 차 한 달 동안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이장호 감독이 연출한 <시선>은 9명의 해외 선교단원이 오지에서 납치를 당한 후 서로 간에 갈등과 신앙의 갈등을 겪는 내용이다. 박용식은 팀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장로 역할을 맡았다.

박용식은 자신의 분량에 최선을 다했고 촬영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촬영 막바지에 설사를 하며 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박용식은 남은 분량을 마친 후 일정을 앞당겨 6월2일 귀국했다.

그러나 건강은 더욱 악화돼 경희대병원에서 치료 받는 중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다.

사망원인은 유비저균에 의한 패혈증이었다. 유비저균은 동남아시아, 호주 북부 등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의 토양과 물속에 널리 퍼져 있는 균이다.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상처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감염되면 장기에 고름이 차고, 폐렴과 패혈증을 동반한다. 백신이 없기 때문에 치사율은 40%에 달하는 질병이다. 박용식이 유비저균 사망 국내 첫 사례다. 향년 67세.

파란만장한 배우 생활을 했던 고인은 분당 가족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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