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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태진아-현대건설 사장 부인’ 간통사건 전말

태진아는 1953년 2월16일 충북 보은에서 4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조방헌이다.

집이 너무 가난해 물로 배를 채우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도시락 한 번 싸가지 못했다. 명절 때는 고기 구경 한 번 못할 정도였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14살이던 1966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돈을 벌기 위해 중국집 배달, 신문팔이, 우유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지금까지 그가 가진 직업이 무려 38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러던 1972년 일식집에서 노래를 부르던 태진아를 작곡가 서승일이 발탁해 무료 레슨을 해줬다. 서 작가는 태진아의 본명을 듣고는 너무 평범하고 촌스럽다며 배우 태현실의 ‘태’, 가수 남진의 ‘진’, 가수 나훈아의 ‘아’를 따서 ‘태진아’라고 지어줬다.

1973년 <내 마음 급행 열차>로 정식 데뷔, 같은 해 <추억의 푸른언덕>이 큰 인기를 얻으며 1974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2년 뒤 간통(불륜)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당시 21살이던 태진아는 26살 연상인 현대건설 조아무개 사장의 아내 김보환(47)과 밀회를 즐기다 적발된다. 내막은 이렇다.

1974년 4월 태진아는 신촌로터리 근처 OB맥주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때 김씨 일행이 술을 마시면서 태진아를 자리에 불러 처음 알게 된다.

김씨와 태진아는 석달 후인 7월 말 인천 올림포스호텔에서 첫정을 통한 뒤 1주일에서 10일에 한 번씩 여관, 모텔, 호텔 등지에서 밀회를 즐겼다.

그러던 1975년 1월26일 오후 1시쯤 태진아와 김씨는 응암동 모 여관에 같이 있다가 김씨 남편과 형사들이 들이닥쳐 발각된다. 경찰은 두 사람을 간통혐의로 구속했다.

태진아와 김보환은 검찰로 송치돼 검찰청사에 불려나왔다. 김씨는 초록색 치마에 밤색 털코트를 입고 하이힐 구두를 신은 평소의 차림이었다.

태진아는 검찰에서 김씨를 만날 때마다 약 50만원씩을 받았으며 총 받은 금액은 600여 만원에 달한다고 진술했다.

당시는 쌀 한가마(80kg)가 5000원 남짓하던 시대였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태진아는 김씨와 밀회를 즐길 때마다 쌀 100가마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은 셈이다.

돈의 사용처에 대해 태진아는 “1백만원은 옷을 해 입고, 나머지 500여 만원은 레코드 취입과 방송국 PD들의 접대에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어려 세상 물정을 몰랐으며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태진아가 심문을 받는 동안 김보환은 수갑과 포승을 한 채 검찰청 대기실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파묻고 있거나 눈을 감고 벽을 향해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태진아의 심문이 끝난 후 검사실로 들어가는 순간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자 “아이고 무서워” 하면서 온몸을 떨기도 했다.

김씨는 조사에서 남편과는 성격이 맞지 않아 2년전부터 영등포구 등촌동 집의 1층과 2층에서 침실을 따로 써왔다고 말했다.

조씨는 김씨를 상대로 이혼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김씨가 합의하면서 정식 이혼한다. 태진아는 조씨가 고소를 취하해 풀려날 수 있었다.

태진아는 간통사건으로 연예협회 가수분과에서 제명되고, 방송 출연금지 등을 당하면서 한동안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태진아 나비효과와 김보환 딸 투신?

사건 이후 김보환의 전 남편 조씨는 현대건설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부사장이던 이명박이 사장으로 승진한다. 이 때문에 한동안 인터넷에는 태진아의 간통 사건 덕분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됐다는 ‘태진아 나비효과’라는 글이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연관성은 없다. 왜냐면 간통사건은 1975년 1월에 일어났고, 이명박이 사장에 취임한 것은 2년 후인 77년 1월이다. 만약 조 사장이 부인의 간통사건이 문제가 됐다면 곧바로 물러났어야 하지만 2년이나 더 사장 자리를 유지했다. 이것을 문책인사로 보기는 어려운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을 ‘태진아 나비효과’로 연결짓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김보환의 딸이 엄마의 간통으로 예정된 결혼이 깨지면서 부산 바다에 투신했다는 루머도 사실이 아니다.

김보환은 조씨와의 사이에서 2남2녀를 뒀다. 조씨는 2014년 6월 9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언론에 나온 부고를 보면 유족 명단에 2남2녀가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망자가 유족 명단에 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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