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베스트클릭사회일반

중‧고교생들 출연 ‘음란비디오 빨간마후라 사건’ 여주인공의 비극

1997년 7월11일 MBC 9시 뉴스데스크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방송된다.

10대 중‧고생들이 집단 성관계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은밀하게 나돌고 있었는데, MBC가 복사본을 입수해 방송한 것이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약 1시간 분량의 비디오는 1‧2부로 구성돼 있었다. 테이프를 재생하면 ‘비디오를 보다-주연 최00’라는 한글자막이 뜬다. 1부 출연자는 남자 2명과 여자 1명, 2부는 남자 3명과 여자 1명이었다.

이들은 번갈아가며 성관계를 갖는데 외국 포르노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성행위 도중 외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자 “00는 집에 없는데요”라며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성행위에 몰두하는 장면도 있다.

큰 키에 예쁜 얼굴인 여자 주인공이 목에 빨간 스카프를 매고 있어 강남일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빨간 마후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비디오는 국내서 미성년자들이 촬영한 최초의 포르노 영상이다.

대체 이들은 누구이며, 왜 이런 비디오를 찍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다. 처음에는 천호동 윤락가에 대한 탐문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통경로를 역추적해 최초 유포자를 찾아내면서 실체가 드러난다.

비디오에 출연한 남녀 주인공들은 모두 중‧고교에 재학중인 학생들로 밝혀졌다.
남자는 A공고 2학년 김아무개군(17)과 안아무개군(17), B고교 1학년 최아무개군(17)이었고, 여자는 김군의 여자친구인 C여중 1학년 최아무개양(15)이었다. 이중 최군과 최양은 촬영 당시는 학교를 자퇴한 상태였다.

여주인공인 최양은 벽지도매상의 외동딸이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랐으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아버지 간병에 매진하면서 최양은 제대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최양은 밖으로 나돌면서 탈선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5년 봄 최양은 학교 선배를 따라 비디오방에 갔다가 ‘첫경험’을 가진다. 그해 가을 학교 축제 때 비디오에 나온 김군을 처음 알게 된다. 무대에 나온 김군의 현란한 춤솜씨에 반한 최양이 먼저 데이트 신청을 했고, 만나자마자 김군의 집 안방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그후 매달 2~3차례씩 김군의 집과 비디오방 등에서 관계를 이어간다. 그해 12월 최양은 가출해 거리를 떠돌다가 서울 강동구 화양리의 한 단란주점에 취업한다. 손님들의 술시중을 들다 밤을 새고 낮에는 주점에서 자는 올빼미 생활을 했다.

그러던 1996년 4월말, 김군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김군의 집(연립주택)에 갔더니 김군과 중학교 동창생인 안군이 있었다. 김군의 부모는 집에 없었다.

안방에는 8m 가정용 캠코더가 설치돼 있었다. 최양이 의아해하자 김군은 “일본 (음란)비디오처럼 우리도 함께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최양은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김군이 계속해서 졸라대자 “그럼 찍고 나서 지운다”는 조건을 내걸고 촬영에 응했다.

최양을 포함한 3명은 옷을 모두 벗은 채 낄낄대고 웃으며 촬영을 시작했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노는 모습, 그대로였다.

김군은 약속대로 촬영분을 삭제하지 않았다. 대신 비디오 테이프를 카메라 주인이자 학교 친구인 이아무개군(17)에게 보여줬다. 이군은 “재미있으니 다시 한 번 찍어보라”고 강권했다.

이군의 제안을 받아들인 김군은 여름 방학때인 8월말 1차 비디오에 나왔던 출연자들을 다시 한번 자기 집으로 모이게 했다. 여기에는 김군의 친구인 B고교 최군이 새로 합류해 남자는 3명이 됐다.

김군은 이후 이 테이프를 일반 가정용 비디오 테이프로 편집, 복사한 뒤 같은해 11월 동네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빌려준다. 이들은 다시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이 과정에서 테이프 복사본이 반복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강동‧강남지역 학생들들에게 급속히 확산됐다. 남학생들끼리 이걸 주고 받거나 되팔았다가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방송인 노홍철은 방송에서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8mm 캠코더를 선물했고, 밤새 에로물 등을 불법 녹화해 친구들에게 2만원을 받고 팔았는데, 그중 하나가 빨간 마후라의 복사판이었다”고 말했다. 1997년 2~3월쯤에는 서울시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종로 세운상가 등에서는 복사본 테이프 1개당 2만~10만원에 은밀히 거래됐다. 이 테이프 중 한개를 MBC 기자가 입수해 방송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2차 비디오를 촬영한 후 최양은 단란주점 단속에 걸려 경찰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래저래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최양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97년 3월에는 여중에 재입학했다.

몇몇 오빠들이 “비디오에서 너를 봤다”고 하자 최양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뉴스를 보고는 불안은 현실이 됐다. 조마조마 하고 있던 얼마 후 경찰이 찾아와 집에서 경찰서로 연행된다.

최양 뿐 아니라 비디오에 나온 고교생들인 김군, 안군, 최군이 붙들려왔고, 비디오카메라 주인이자 2차 비디오 촬영을 종용한 이군, 테이프를 유통시킨 김군, 이군, 한군 등도 연이어 붙잡혔다.

김군은 경찰에서 “일본 음란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재미삼아 찍었다”며 “친한 친구들이라 잠시 빌려줬는데 몇 사람을 거치면서 그만 유출되고 말았다”고 체념했다.

최양은 “오빠들이 함께 만들자고해 응했다”며 “이후 오빠들이 약속대로 테이프를 버렸다고 해 그런 줄 알았으나 며칠 전 TV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비디오에 출연했던 남자 고교생들 대부분은 중산층 가정이었다. 최양의 남자친구인 김군의 아버지는 의류공장 사장, 최군의 아버지는 미8군 사무원, 테이프를 배포한 이군의 아버지는 국방부의 간부급 직원이었다.

비디오에 출연한 4명은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위반(음란물제작) 혐의로, 유포자는 음란물배포혐의 등으로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다 2000년 5월에 여주인공이었던 최양의 근황이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지게 된다.

사건 이후 최양은 소년원에서 4개월 정도 있다가 출소 후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최양이 빨간마후라의 여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 결혼할 수 없었던 최양은 양가 부모의 동의아래 남자의 집이 있는 강원도 철원에서 같이 살았다.

2년 후인 2000년 초 동거남이 서울에 직장을 얻어 최양과 함께 서울로 왔다. 최양은 서울 생활이 무료해지고 용돈도 필요하자 일거리를 찾았으나 마땅치 않자 서울 서초동의 한 단란주점에 들어간다.

최양과 친구는 지배인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업주는 최양을 자신의 집에 감금시키고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했다. 그는 최양에게 술시중 뿐 아니라 7-8차례에 걸쳐 윤락을 강요하는 등 ‘노예매춘’을 시켰다.

뿐만 아니라 최양에게 “나이가 어려 위험하니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주겠다”고 속여 사진 2장과 지문을 찍게 한 다음 50만원을 받아 가로채는 등 화대를 갈취하기도 했다.

최양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후회한다”는 말을 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최양이 윤락녀가 됐다는 것에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