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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강의실 천장에서 실종 11년만에 발견된 학생 시체

서울 성북구 안암로에는 고려대학교가 있다.

1972년 4월1일 오후 4시50분쯤, 고려대학교 본관 4층 409호 강의실에서 백골 시신이 발견된다.

당시 천장에서 전기공사를 하고 있던 김효준씨(31)가 지붕과 천장사이(높이 1.2m)에서 백골 시신을 목격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교복 차림의 시신은 본관 뒤쪽을 향해 영어책을 베고 양손을 아래 주머니에 넣은 채 반듯이 누운 상태였다. 낡고 퇴색한 감색 교복 상의 왼쪽주머니에는 학생증, 오른쪽에는 구화 100환, 바지 주머니에는 1만3100환이 들어있었다.

또 머리쪽에는 뚜껑이 열린 약병과 약종이, 배지, 나일론 혁대 등이 놓여 있었다.

경찰의 신원확인 결과 시신은 11년 전에 실종된 당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허용씨(21)였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는 61년 1월10일 오전 11시쯤, 교복 차림을 한 채 영어책 한권을 들고 집을 나갔다. 가족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허씨는 귀가하지 않았고, 가족들은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경찰에 가출신고를 접수했다. 허씨의 어머니는 각 신문사를 찾아가 “아들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실종된 지 한 달쯤에는 일부 언론사에서 허씨의 실종을 크게 보도했고, 고려대 교내 게시판에는 “허씨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학교 당국에 연락해 달라”는 공고문이 나붙었다.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자 허씨의 어머니는 절에 가서 불공을 하고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아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타살 혐의점이 없는 반면, 409호실 천장은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구석진 곳이고, 약병이 있었던 것으로 미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안의도 “사체가 형체조차 없어 판단하기 어려우나 자살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건 관련 기사.

허용씨는 1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었다. 공부는 잘 했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했다. 양정고 3학년 때인 1958년 10월30일에는 학교측으로부터 납부금 독촉을 받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친 일도 있었다.

대학 때에도 생활이 어려워 2학년 1학기에 등록금을 내지 못해 제적됐다가 그해 2학기에 재입학 형식으로 등록했다.

허씨의 어머니는 경찰에서 “아들이 마지막 집을 나갈 때 책상위에 있던 책 대부분을 다락에 챙겨 놓고 나갔는데 그 이유가 늘 궁금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생활고 등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종결하고 시신은 가족에게 인계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는 1973년 성심여대 굴뚝에서 자살한 양혜란(1966년)과 고려대 강의실 천장에서 발견된 허용(1972년)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굴뚝과 천장’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오 교수는 이 작품에서 4.19 혁명 전후의 대학가의 모습, 학생들 내부의 현실 비판과 좌절 등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