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연재

자문위원을 소개합니다

사건전문 뉴스사이트인 ‘정락인의 사건추적’에서 명망있는 자문위원들을 모셨다.

운영자가 현역 기자시절 인연을 맺었고, 지금까지 끈끈한 인간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 분 한 분 자기분야에서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향후 사이트 운영, 기사 작성, 커뮤니티 활동 등에서 자문하게 된다.

실종자 800명 찾은 전설의 기록
제13회 서울시민대상 수상
제43회 청룡봉사상 수상
현 (사)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전미찾모) 회장

각설이 왕초로 활동하다 우연히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개구리소년 부모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운명이 바뀐 나주봉 회장. 그는 사비를 털어 개구리소년들을 찾는 전단지 수만장을 제작해 전국을 다니며 아이들을 찾았다.
그리고 서울 청량리역 인근에 조그만 컨테이너 박스를 사무실로 삼아 지금의 (사)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전미찾모)를 만들어 단체 회장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실종자를 800명 넘게 찾아 전설의 기록으로 남았다.
서울시 주최 제13회 서울시민대상과 조선일보 주최 제43회 청룡봉사상을 수상했다.

전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조폭팀장
전 서울경찰청 강남경찰서 강력팀장
연쇄살인마 유영철 검거

형사 중 형사로 불린 김상중 경감. 그는 경찰 생활 대부분을 강력반에서 근무했다.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서 7년 동안 강력수사를 전담했고, 광역수사대로 개칭한 후에는 ‘조폭 팀장’을 맡기도 했다.
2004년 7월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검거됐다가 기수대에서 탈출한다. 당시 기수대 3계 소속이던 김상중 형사는 동료들과 함께 유영철의 동선을 파악한 후 해당 지역을 샅샅이 뒤졌고, 얼마 뒤 여의도역에서 영등포역 사이 영등포 로터리 부근에서 그를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경찰학, 상담지도학, 동양의학 박사
현 대한시큐리티연구소(KSI) 이사장
현 국제구명구급협회(IMEA) 한국본부 회장
현 대한민국탐정협회 상임회장

국내 최고 재난‧안전전문가 중 한 명인 손상철 회장은 국제구명구급혐회 한국본부(IMEA) 회장이다. 또 국내 탐정산업의 활성화와 탐정문화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탐정협회(KAPI)를 설립해 상임회장을 맡았다.
현재 대탐협은 ‘민간정보분석사’, ‘경호사격마스터’ 등의 자격시험을 주관하고 ‘탐정아카데미’ 운영 등 탐정산업 활성화와 탐정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간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은 손상철 회장은 경기도지사 표창, 행정안전부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전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지능팀 근무
전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전 서울경찰청 서초경찰서 강력팀장
현 원일행정사(탐정) 대표

원찬희 경감도 현역시절 베테랑 수사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지능범죄, 국제범죄, 강력범죄 수사에 정통하다. 30년 넘게 경찰관(형사)으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고 무수한 범죄자들을 교도소로 보냈다.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지능팀에서 경제범죄와 사기범죄 등을 담당했고, 국제범죄수사대에서는 국제범죄를 오랫동안 수사하며 국제범죄 전문가로 통했다. 서초경찰서 강력팀장으로 재직하던 중 2023년 명예퇴직(경정)했으며, 현재 원일행정사 대표를 맡고 있다.

전 육군본부 참모총장 경호대장
전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과장‧범죄정보과장
전 육군사관학교 헌병대장
제13회 투명사회상 수상

정의로운 군인 황인걸 대장은 육군사관학교 45기로 임관했다. 그는 강직한 성격 탓에 보병지휘관 보다는 헌병 병과가 더 성격에 맞는다고 판단해 ‘헌병’이 됐다. 동기생들중 선두에서 질주했으며, 연이어 헌병 병과 내 선호보직에 발탁됐다.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 소대장, 대통령경호실 33헌병대 제대장, 육군본부 참모총장 경호대장,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과장‧범죄정보과장 등을 지냈다. 군내의 헌병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친 것이다. 이대로 가면 헌병 병과장(준장)과 국방부 조사본부장(소장)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국방부 조사본부 범죄정보과장(중령)을 맡고 있을 때,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 비리 제보를 받고, 군 적폐와 싸우다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
그는 명예회복을 위해 국방부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징계처분취소 소송에 나서는 등 피말리는 싸움을 이어갔고, 결국 승리했다. 한국투명성기구는 제13회 투명사회상 수상자로 황인걸 중령을 선정했다.
그러나 연거푸 진급에서 누락되기 시작했고, 진금심사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모교인 육군사관학교 헌병대장으로 재직하다 군복을 벗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