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고려대 의과대학생들 동기생 집단 성폭력 사건

서울시 성북구 안암로에 본교가 있는 고려대학교는 명문 사립대학이다.

고려대 학부에는 의과대학이 있다. 의대는 보통 의예과(예과, 2년)와 의학과(본과, 4년) 과정의 총 6년제로 구성된다. 예과는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기 전에 기본 배경이 되는 의학 기초학문을 배우고, 본과는 본격적으로 의학을 배우는 과정이다.

2011년 5월21일 고려대 의대 본과 4학년 동기생인 박아무개씨(23), 배아무개씨(25), 한아무개씨(24) 그리고 여학생인 A씨(23)가 경기도 가평 용추계곡으로 MT(단합대회)를 떠난다. 일행 중 한 명이 서울 근교로 1박2일 주말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4명이 동행하게 된 것이다. 원래는 여자 2명 등 총 5명이었으나 한 명이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다.

이들은 오후 6시쯤 숙소인 가평의 한 펜션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야외로 나가 술자리를 시작했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소주 1병(500㎖)과 와인 2병을 마셨다.

밤 9시가 되자 펜션 안으로 자리를 옮겨 2차로 이어졌다.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소주 500㎖ 2병, 와인 2병, 소주 2홉짜리 2병을 더 마셨다. 그래도 술이 부족했던지 막걸리 1병(750㎖)을 추가로 사와서 나눠 마셨다. 일행들 모두 취기가 올랐고, 이중 주량이 소주 한 병이 조금 안 됐던 A씨는 만취 상태가 된다.

밤 11시40분쯤 A씨가 한씨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다. 평소 한씨가 A씨에게 좋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박씨와 배씨는 “둘만의 시간을 가지라”며 밖으로 나간다.

둘만 남게 되자 한씨는 A씨의 입술에 입맞춤을 한 뒤 성추행을 시작한다. A씨의 상의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들어올린 후 가슴을 손과 입으로 추행하고 엉덩이를 만지기도 했다.

10분 후인 11시50분쯤, 박씨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이때 A씨의 가슴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는 “둘이 있을 시간을 줬는데 아직까지 그러고 있냐”며 누워있는 A씨 옆에 앉았다.

그는 한씨를 말리기는 커녕 더 노골적으로 추행을 시작했다. 한씨가 A씨의 오른쪽 가슴을 추행할 때 박씨는 왼쪽 가슴을 같은 방법으로 추행했다. 조금 있다 한씨가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자 A씨의 바지를 벗기려다가 바지속으로 손을 넣어 성기를 만졌다.

박씨와 한씨는 휴대전화로 A씨의 가슴을 무단으로 불법 촬영했다. 여기에 더해 박씨는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A씨의 성기 등 신체를 21회나 찍었다.

자정쯤이 되자 밖에 있던 배씨는 한씨와 방안으로 들어갔고, 박씨가 A씨를 추행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배씨 또한 A씨 옆에 앉아 손으로 가슴과 배 부위를 만지며 추행했다.

이들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차 추행을 당한 후 A씨는 밖으로 나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후배와 약 30분 정도 비를 맞으며 통화했다. 이후 잠자리 위치를 바꿔 다시 잠에 들었다. 잠자는 도중 무의식중에 비에 젖은 바지를 벗는다.

다음 날 새벽 4시20분쯤 박씨는 A씨가 바지를 벗고 잠에 든 것을 보고는 옆으로 다가가 입맞춤을 하고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과 성기를 만졌다. 이때 A씨의 왼쪽에 누워있던 배씨도 가까이 다가가 성기를 만졌다. A씨가 이들을 피해 잠자리를 옮기자 박씨와 배씨는 쫓아가 추행을 이어갔다.

이로써 한씨와 박씨, 배씨는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인 여자 동기생을 순차적으로 공모해 합동으로 추행하는 성폭력을 저지른다.

A씨는 5월23일 월요일 여성가족부 성폭력상담소와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학교 양성평등센터에도 알렸다. 경찰은 가해자 3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들은 A씨를 추행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은 사실은 인정했으나 성폭행과 약물 사용 혐의는 부인했다. 당시 촬영한 영상 등은 삭제된 상태였다.

경찰은 세 명이 장시간 추행했다는 점에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되고 서로 말을 맞춰 범행을 부인할 가능성도 있다며 가해자들에 대해 ‘특수강제추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아울러 A씨의 체액과 혈액 등을 채취해 추행 외 성폭행이 있었는지와 가해자들이 술에 약물을 탔는지 등을 알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또한 가해자들의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 등을 압수해 삭제한 영상도 복구 의뢰했다.

국과수 감정결과 성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가해자들을 성폭력범죄처벌법상 특수준강제추행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죄질이 중한 박씨에게는 징역 2년6개월, 배씨와 한씨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아울러 3년간 이들의 신상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할 것을 명령했다. 범행에 사용된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 등은 몰수했다. 배씨의 경우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형량이 높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원심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수년간 함께 생활한 동기 여학생이 술에 취해 반항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추행한 것은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특히 피해 여학생은 큰 충격을 받고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등 2차 피해도 받고 있다. 범행 내용과 가담 정도를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가해자 중 박씨와 배씨가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원심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형량을 확정했다.

배씨의 경우 피해자인 A씨가 인격장애라는 등의 허위 사실이 담긴 문서를 꾸며 동료 의대생들에게 배포한 혐의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추가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불구속 재판을 받던 배씨 어머니는 법정 구속됐다.

배씨와 그의 어머니는 교내에서 동기들을 대상으로 ‘피해자는 평소 사생활이 문란했다/아니다’, ‘피해자는 싸이코패스다/아니다’ 등 인격 모독적인 설문조사를 벌였다. 피해자는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강제추행 피해자의 신원과 행실, 성격, 친구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마치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 처럼 몰고가는 내용의 허위 문서를 작성했다”며 “이러한 내용들이 널리 퍼져 피해자에게는 치명적인 2차 피해를 입혔다”고 판시했다.

모자는 항소했고 A씨가 합의해 주면서 2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각각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했다.

사건이 알려진 뒤 고려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가해자들을 출교하라는 항의와 1인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의과대학 내부에서는 ‘출교해야 한다’는 의견과 ‘너무 가혹하다’는 동정론으로 엇갈렸다. 대학 측은 사건발생 3개월이 지나도록 징계 수위를 정하지 못해 사회적인 비난을 받았다.

결국 의대 징계위원회는 가해자들에 대해 최고의 중징계인 ‘출교’ 처분을 내렸다. 이것은 학칙상 최고 수준의 징계로 학적이 완전히 삭제되고 재입학이 원칙적으로 불허된다. 고려대의 학생 출교 처분은 지난 2006년 본관 점거 학생들에 이어 사상 두 번째다.

이렇게해서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러다 2016년 출소한 가해자 중 한 명이 성균관대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어난다. 가해자 중 가장 죄질이 무거웠던 박씨가 2014년 성균관대 의대 정시모집에 합격해 본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성균관대 의대 동급생 중 한 명이 가해자와 이름이 같은 박씨의 실명을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통해 조회하면서 과거 행적이 드러났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 측에 ‘의사가 되기에 성범죄 전과는 윤리적으로 결격사유’라며 박씨의 출교 조치를 강하게 요구했으나 학교 측은 법무팀 및 로펌에 문의한 결과 “출교 조치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박씨도 계속해서 학교를 다니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박씨는 2020년 2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면허증을 취득한 뒤 가톨릭 중앙의료원 인턴으로 합격했으나 취소됐다.

2021년 3월에는 개명 후 서울 한일병원 인턴 대표인 인턴장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병원은 한국전력공사 산하 한전의료재단이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이에 병원 측은 수련위원회를 열어 박씨를 해임했다. 그는 여기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자가 의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의료법의 문제점이 공론화됐다. 국회에서는 성범죄를 의료인의 결격 사유로 규정하는 법률 개정이 추진됐지만 의사단체 등의 반발로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다 2023년 4월에서야 중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 의사가 범죄를 저지르고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최대 5년간 면허가 취소된다는 게 골자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