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사건

육군 제5군단 ‘K9 자주포 폭발’ 사망사건

강원도 철원에는 육군 제5군단 산하 5포병여단이 주둔하고 있다.

2017년 8월18일 오후 3시19분쯤, 이 부대에서 K9 자주포 사격연습 중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K9 10여 문이 참여한 훈련 중 5번째 자주포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포를 발사하면서 화재가 났고, 곧이어 폭발로 이어졌다.

당시 사고 자주포에는 7명의 장병이 탑승하고 있었고, 폭발이 일어나면서 이태균 중사(26)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6명은 급히 경기도 성남에 있는 국군 수도병원으로 후송됐다. 이중 정수연 일병(22)과 위동민 상병(20)의 상태는 심각했다. 결국 정 일병은 8월19일 새벽 3시8분쯤 사망했다.

수도병원은 화상전문의가 부족한 상태였다. 사고 장병의 가족들은 민간병원 이송 허가를 받기 위해 의무사령관 면담을 신청했으나 11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화상 전문병원인 서울 한강성심화상센터로 4명이 이송됐다.

위동민 상병의 경우 전신 80%에 3도 화상을 입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병원에서는 “화상이 너무 심해서 한 달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식할 피부가 없어 피부배양을 해야 수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위 상병의 아버지 광일씨는 “아침저녁으로 드레싱 할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을 듣기가 힘들었다”며 “그런데도 부모가 면회 가면 웃으며 우리를 안정시키곤 했다”고 말했다.

또 가장 화상이 심한데도 포대장이나 포대원들 걱정만 했다고 한다. 부모는 “너만 생각하고 이겨내자”는 말 뿐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위 상병은 당시 사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원인을 궁금해 했다고 한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기적 같은 5일을 보냈다. 아버지 위씨에 따르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면서 한동안 웃기도 하고 약간의 음식도 먹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악화됐다”는 것이다.

9월12일 오후 6시쯤부터 위험한 상황이 됐다. 심정지를 막기 위해 약물을 투여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심정지가 와서 최고 단계의 약물을 투입했지만 결국 13일 새벽 3시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 위 .

위동민 상병은 한신대 일본어학과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2016년 8월 군에 입대했고, 5포병 여단에 자대 배치를 받았다. 그는 외교관을 꿈꾸고 제대 후에는 해외여행을 간다며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꼬박꼬박 모았다. 그런데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장에서 사망한 이태균 중사는 충북 충주가 고향이다. 충주 대원고를 졸업한 뒤 5포병여단에 배치됐다. 2011년 현역 부사관에 지원해 2012년 5월 하사로 임관한 뒤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이 중사의 부모는 충주시 신니면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이 중사는 결혼해서 아내와 18개월된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같은 사연을 들은 배우 이영애씨가 성금 5천만 원을 부사관 학교에 전달하고, 이 중사의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정수연 상병은 전문대 기계설비학과에 진학해 졸업을 한 학기 남긴 2016년 12월12일 입대했다. 정 상병은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머니께 70만~80만원 용돈을 쥐어주곤 했다.

군대에서도 1주일에 한 번은 꼭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사고 나기 전인 7월28일 휴가를 나와 8월4일 복귀했다. 이게 부모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정 상병의 부모는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이다. 부부는 서울 금천구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아버지 정씨는 사고 당일 오후 4시쯤 전화로 사고 소식을 들었다. 수도병원에 갔을 때 아들은 이미 중태였고, 다음 날 새벽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번 사고로 숨진 순직자에게는 1계급이 추서됐고,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다. 이후 유해는 화장을 거쳐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런데 K-9 폭발했던 것일까.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하는 큰 사고였지만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군 당국은 사고 직후 민·관·군 합동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를 꾸렸다. 그리고 2017년 12월26일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사고 원인을 ‘기계적 문제’로 결론 내렸다.

조사위는 사고의 원인으로 격발 스위치가 오작동을 일으켜 자동 격발된 점, 폐쇄기(탄약·장약을 삽입하고 밀폐하는 장치)가 닫히지 않은 점, 닫히지 않은 폐쇄기에서 나온 화염이 바닥에 놓아둔 장약(화약)을 급속으로 연소시킨 점 등 크게 3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일어나 사고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K-9 자주포 개발 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제조사인 한화 측이 사고원인 조사과정에서 자신들의 참여가 배제됐다며 조사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육군이 제시한 사고원인은 여러 가지 가설 중의 하나이며, 그 또한 정확하게 검증된 것이라기보다 추정에 기반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군 당국이 거대규모의 합동조사위를 꾸렸지만 실질적인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숨진 장병들과 유족들만 억울하게 됐다.

유족들은 국방부나 육군본부 그리고 장비 제조사 모두 이 사고에 대해 무책임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한다. 유족 측은 육군이 희생 병사들을 ‘실험대상’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고 위동민 병장의 아버지 광일씨는 “우리는 당시 사고는 뇌관의 비정상적인 압착 폭발과 폐쇄기 기능 결함으로 인해 화염이 유출됐고, 자주포 내에 있던 장약이 폭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K-9 자주포 내에는 3호 장약까지 들어가는 장약함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3호 장약보다 길이가 긴 5호 장약을 사용해 사격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위씨는 또 “군 당국과 장비제조사는 서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우리 아들들이 왜 죽었는지 아직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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