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살인자가 된 가장’ 옥천 검도관 일가족 사건

충북 옥천읍 죽향리에는 한 검도관이 있었다.

관장인 오아무개씨(42)는 인근 아파트에서 아내 A씨(39), 연년생인 세 딸 B양(10), C양(9), D양(8)과 함께 살았다. 한때 행복했던 이 가정은 한 순간에 완전히 무너졌다.

가장 오씨는 하루 아침에 아내와 자식들을 죽인 살인자가 됐다.

2018년 8월25일 오후 1시53분쯤 A씨 여동생은 언니가 사는 아파트를 방문했다. 이날 A씨와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직접 집에 찾아온 것이다. 현관문을 들어선 그녀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다.

언니와 조카들이 모두 숨져 있었고, 시신은 이불로 덮여 있었다. 형부 오씨는 양쪽 팔목과 복부에서 피를 흘리며 안방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A씨의 여동생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119구급대가 아파트로 출동했을 때 오씨 아내는 안방 침대에서, 세 딸은 작은 방에서 각각 이불을 덮은 채 누운 상태로 숨져 있었다. 입가에서는 거품 흔적이 있었다. 오씨는 대전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고, 건강이 회복돼 살인혐의로 체포됐다.

오씨에 따르면 모든 비극의 원인은 감당할 수 없게 된 빚이었다.

검도 공인 6단인 그는 옥천에서 10여 년 동안 검도관을 운영했다. 한때 잘 될 때는 관원이 80명 정도를 웃돌았다. 검도관 운영이 잘 되면서 오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그는 은행 대출금을 끼고 39평형대 아파트를 구입했다. 대전의 한 원룸에 투자하기 위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검도관 관원들이 줄어들면서 돈에 쪼들리기 시작한다.

오씨는 아파트 담보 대출을 늘리면서 금융권에서 돈을 끌어들였다. 그러다보니 아파트에는 시세와 차이가 없는 2억5천만원의 제2금융권 근저당이 설정됐다. 여기에다 원룸 투자도 실패로 끝나 오씨는 빚더미에 앉고 말았다. 갚아야 할 빚이 7억 원대에 달했다.

금융권 이자를 갚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한 달에 갚아야 할 이자만해도 400~500만원 정도였다. 검도관 운영으로 얻는 수입으로는 이자를 갚기에도 버거웠다. 오씨는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체육관 관원 중 대학생 3명의 명의를 빌려서 대출을 받았고, 이것이 학생과 부모에게 알려지면서 강하게 항의를 받았다.

오씨에게는 더 이상 돈이 나올 곳도, 손을 벌릴 곳도 없었다.

하루하루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 막다른 길에 몰렸다. 평소 자신을 믿고 따르던 관원한테마저 빚쟁이로 몰리면서 더는 버틸 방법이 없었다. 오씨는 ‘집 안에 일이 있다’며 수강생들에게 문자를 보낸 뒤 8월21일부터 검도관 문을 열지 않으면서 사실상 폐업에 들어갔다.

그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가족과 함께 죽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옥천의 한 약국에서 수면제를 구입했다. 8월24일 오후 아내와 세 딸에게 수면제 성분이 든 약을 먹게 했다. 가족들이 잠들자 오씨는 차례차례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자신도 죽기 위해 흉기로 복부를 찌르고 손목도 그었다. 하지만 처제에게 발견되면서 오씨는 살아남았다. 발견 당시 그는 과다 출혈로 의식이 희미한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가족들을 부탁한다.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오씨는 성실한 가장이었고, 검도관에서는 엄격하면서도 정 많은 관장이었다.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고, 오로지 가족과 운동에만 전념했다. 세 딸을 끔찍하게 아껴 퇴근 뒤에는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끝없이 불어난 빚은 가족의 비극적 파멸을 부르고 말았다. 오씨는 경찰에서 “수년 전 진 빚이 수 억 원이나 돼 독촉에 시달렸다”며 “혼자 죽으려고 했으나 남은 가족이 멸시받을 것 같아 함께 죽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오씨는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가족을 죽이고, 자신은 ‘살인자’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오씨는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양육과 보호책임이 있는 가장이 독립된 인격체인 부인과 딸들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목숨을 빼앗은 것은 엄중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자신도 죽으려 했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오씨는 여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도 원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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