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강동카바레 종업원 독살사건

서울시 광진구 천호동 광진교 남단사거리에서 천호시장 가는 큰 길가에는 ‘강동카바레’가 위치해 있었다.

당시 천호동 일대에서 영업하던 카바레 6곳 중 가장 규모카 컸고, 손님이 항상 북적거릴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 업소는 원래 신상옥 감독의 부인이었던 배우 최은희씨의 동생 경옥씨(50) 소유의 ‘호수카바레’였다. 81년 4월 최씨는 김씨(40)와 강씨(43)에게 매각했고, 두 사람은 ‘강동카바레’로 업소명을 바꿔 공동 경영해왔다.

1983년 3월17일 오후 10시50분쯤, 카바레 영업 종료 10분을 남기고 홀 안에는 남녀손님 20여 명이 있었다. 이때 보조 웨이터 신동찬씨(남‧26)는 주 웨이터 구재송씨(여‧36)에게 다가갔다.

그는 “선배, 손님도 별로 남지 않았는데, 빨리 계산하고 퇴근하시죠?”라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영업이 끝난 뒤 일일 결산을 했지만 오늘 따라 신씨는 빨리 끝내고 가자며 재촉했다.

구씨는 “알겠다”며 평소대로 신씨와 함께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때 뒤따라 들어온 신씨의 눈에 선반에 놓여 있던 요구르트가 눈에 띄었다. 뚜껑에는 은박지가 반쯤 붙어 있었다. 신씨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누가 나 먹으라고 요구르트를 놓고 갔네”라며 농담조로 말하더니 손에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신씨가 이상했다.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구토가 나오려는 듯 컥컥거리다가 조용해졌다.

깜짝 놀란 구씨가 카바레 종업원들을 불러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사망한 뒤였다. 신씨는 입술이 시퍼렇고 거품까지 물고 있는 등 전형적인 독극물 중독 증상을 보였다. 부검결과 신씨의 몸에서는 독극물인 청산가리 성분이 나왔다. 요구르트에서도 같은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구씨를 통해 전후 사정을 듣고 누군가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집어넣은 후 화장실 선반에 올려놓은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카바레 안에 있던 손님, 종업원 등 모두가 용의 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카바레에 갔을 때는 영업이 끝난 뒤라 홀안에 있던 손님 뿐 아니라 남녀종업원 12명과 댄서 11명 등은 대부분 퇴근한 상태였다. 신씨와 함께 화장실에 있던 구씨를 상대로 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용의점은 없었다.

사건 현장인 여자 화장실. 3월17일과 18일에 독극물이 든 요구르트가 화장실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다음날인 18일 저녁 8시30분쯤, 같은 장소인 여자화장실 화장대 거울 뒤편 틈새에서 또 하나의 독극물 요구르트가 발견된다. 경찰이 화장실을 샅샅이 수색한 뒤 누군가 또 다시 청산가리가 든 요구르트를 가져다 놓은 것이 분명했다.

카바레 측은 영업시작 전 실내 청소할 때나 영업도중에도 보이지 않던 것이어서 용의자가 손님들 중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에 따라 출입문을 막고 홀 안에 있던 30여 명의 손님들을 아무도 못 나가게 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이 문제였다. 용의자가 손님들 중에 있을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경찰은 검문이나 신분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손님 중에 용의자가 없다면 이전에 출입했다 나간 손님들을 대상으로 용의자를 좁혀갈 수도 있었다. 경찰은 미숙한 대응으로 사건 해결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경찰은 숨진 신씨를 계획적으로 노린 범행은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 신씨는 6년 전 홀어머니를 여의고 78년말부터 카바레에 근무(방위 복무 1년 제외)했으며 온순하고 착한 성격으로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없었다. 여기에다 그가 남자인데다 범행 장소는 여자 화장실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찰은 업주 또는 종업원과 관련된 갈등이나 원한, 업소간의 경쟁 심리,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테러 등을 수사 선상에 올려놓았다. 가족의 춤바람으로 가정이 파탄 난 사람의 원한 범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중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묻지마 테러’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요구르트가 눈에 쉽게 띄는 화장실 출입구 바로 옆 세면대 위에 놓여 있었던 것도 이를 뒷받침했다.

범인은 남자보다는 여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독이 든 요구르트를 가져다 놓은 장소가 여자 화장실이었고 만약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면 쉽게 눈에 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카바레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다 옷 보관담당 종업원인 김아무개씨(여‧20)에게서 유력한 증언을 확보한다. 사건 당일인 17일 밤 8시30분쯤 한 40대 여성이 옷과 함께 유산균 음료수 1병을 맡기려고 했으나 김씨는 옷만 맡기도록 된 규정에 따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 여성은 이 병을 창구 옆의 상자 위에 놓고 갔다고 한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김씨의 증언에 따라 158cm 정도의 키에 목소리가 탁한 이 여성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김씨 진술의 신빙성에 문제가 오류가 있었다. 불특정 여성이 음료수를 맡기려고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나머지는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옷만 받아줬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요구르트도 같이 맡아줬는데 나중에 보니 없어졌다거나 40대는 얼굴이 아닌 목소리만 듣고 판단했다는 등 신뢰성에 의문이 갔다.

그러다보니 경찰 수사는 뒤죽박죽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였다. 경찰 수사는 혼선만 거듭한 채 용의자를 특정하는데 실패했고, 희대의 독살사건도 결국 미제로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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