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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여대 굴뚝에 투신한 ‘가수 김현식’ 미모의 사촌누나

천주교 성심수도회는 1957년 재단법인 성심학원을 세운다.

7년 후인 1964년 1월 성심학원은 강원도 춘천시 옥천동에 성심여자대학을 개교했다.

1966년 이 학교 불문과에 미모가 뛰어난 양혜란양(19)이 입학한다. 경기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양양은 아버지가 서울의 대기업 임원으로 가정도 부유했다.

이런 양양이 같은 해 11월18일 오후 갑자기 사라진다. 학생들은 양양이 3층 식당으로 가다가 혼자 빠져나간 것을 마지막으로 기억했다. 이들은 교내에서 양양을 찾아나섰지만 어디에서도 흔적이 없었다.

그러자 경찰에 신고했다.

다음 날 학생 중 한 명이 평소 “내가 없으면 굴뚝 밑에 가보라”던 양양의 말을 떠올리고 경찰에 알렸다.

학교 보일러실 굴뚝(높이 28m, 직경 1.4m)을 수색하던 경찰은 양양의 시신을 발견한다. 발견 당시 시신은 팔, 다리, 늑골 등이 부러진 상태였지만 타살 흔적은 없었다. 현장에 유서는 없었다.

양양의 투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자관계에 의한 자살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난무했다. 경찰이 사망원인 조사에 나섰고, 양양이 평소 염세적(세상을 싫어하고 모든 일을 어둡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인 성향의 문학소녀였다는 것을 파악한다.

양양은 무신론을 놓고 학교 교수들과 곧잘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전 중간고사 때는 몸이 아파 시험을 못 치렀고, 이로인해 상심이 컸다고 한다.

죽기 며칠 전에는 서울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경기여고 시절에도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이런 정황에 따라 양양의 사망을 ‘허무주의에 빠진 염세적인 문학소녀의 자살’로 결론내렸다. 굴뚝에서의 자살은 이례적인 죽음이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도 비중있게 보도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언론기사.

소설가이자 시인인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는 1973년 성심여대 굴뚝에서 자살한 양혜란(1966년)과 고려대 강의실 천장에서 발견된 허용(1972년)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굴뚝과 천장’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알고보니 자살한 성심여대생 양혜란은 가수 김현식의 외사촌 누나였다. 김현식은 어릴적부터 사촌형인 양국정, 사촌누나인 양혜란과 가깝게 지냈다. 김현식이 보성중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기타를 접하는데, 기타치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사촌형 양국정이다.

김현식이 8살 때 양혜란이 자살했고, 끔찍하게 좋아했던 사촌누나의 돌연한 죽음은 어린 김현식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김현식은 ‘비처럼 음악처럼’, ‘내사랑 내곁에’, ‘추억만들기’, ‘사랑했어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지만 1990년 11월1일 33세의 나이에 간경화로 요절한다.

가수 김현식의 어린 시절 모습.

한편, 양혜란이 다녔던 성심여대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천주교 성심수녀회는 1974년 경기도 부천에 성심여대 분교를 설립했다. 1982년에 춘천본교가 폐쇄되고 부천 분교와 통합된다. 1992년 성심여대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됐으나, 1991년 1월에 가톨릭대학교에 통합됐다.

성심여대 춘천 본교 터는 성심자선병원을 운영하던 학교법인 일송학원에서 받아 대학을 세웠는데 지금의 한림대학교다. 성심여대 본부 건물은 현재 한림대 공학관 건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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