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배우 김성찬 말라리아 감염 사망사건

배우 김성찬은 인천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선인고를 거쳐 홍익대를 졸업했다.

그는 배우의 꿈을 갖고 있었으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갈등했다. 식당 종업원, 구두닦이, 막노동 등을 하면서도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토록 소망하던 연기자의 꿈은 1973년에 이뤘다. MBC 공채 6기에 합격해 탤런트로 데뷔했는데, 이때 동기생이 임채무, 유인촌 등이다.

김씨는 개성있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주로 코믹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주요 출연작은 TV 드라마 <무풍지대> <용의 눈물> <야망의 전설> 등이 있다. 영화 <성춘향전> <레테의 연가> <미래에서 온 소녀> 등에서도 감초 연기를 펼쳤다.

그는 많은 작품에 참여했지만 한 번도 ‘주연’을 맡지는 않았다. 만년 ‘조연’으로 그늘에 머물면서도 그 역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의 연기 생활은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때 날개가 꺾였고, 그것이 운명을 갈랐다.

1999년 9월17일, 김씨는 KBS 2TV <도전! 지구탐험대>의 외주제작사로부터 출연 섭외를 받았다. 원래 출연하기로 했던 연기자가 일정에 차지을 빚어 참여할 수 없게 되자 담당 PD는 급히 김씨에게 출연을 부탁했다.

당시 김성찬은 대구 교통방송에 고정 출연하고 있었다. 방송 때문에 주중에는 매일 서울과 대구를 왕복하며 강행군을 했다. 그는 또 자신이 설립한 극단 ‘항아리’에서 무대에 올릴 연극 ‘옥녀전’을 준비 중이었다.

이런 그였지만 평소 친분이 있던 제작진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김씨는 급하게 섭외됐다. 좋은 음식도 급하게 먹으면 체 하듯이 촬영준비도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9월20일 김성찬은 촬영팀과 함께 라오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발 때부터 이미 위험을 안고 있었다. 정글 풍토병인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출발 1주일 전에 항생제를 복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김성찬에게 섭외가 들어온 것은 출국 3일 전이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라오스 남부 도시 탁세에서 버스로 24시간 거리에 있는 태국-라오스 접경지역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원주민거주 지역에서도 황열,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 대한 예방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비책도 전혀 없었다. 현지 촬영도 처음 계획했던 것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김성찬은 10월1일 귀국한 후 이전의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 인하대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통해 말라리아 감염 진단을 받았다.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상태는 심각했다.

심장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심부전, 뇌에 피가 공급되지 않아 세포가 죽는 뇌허혈 등 합병증까지 겹쳤다. 이미 말라리아균이 뇌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결국 뇌사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4주 만인 10월7일 끝내 사망했다. 향년 45세였다.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출발 1주일 전에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며 여행을 마치고 난 뒤에도 약을 한 달 정도 복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도 100% 예방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전염 예상 지역은 피하거나 모기에 물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성찬은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이 프로그램 제작사의 박아무개 PD는 “말라리아 약은 국내보다 현지약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빠듯한 일정 때문에 예방조치 없이 떠났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지에서도 약을 복용하려고 했으나 ‘약을 먹으면 한동안 몸살기운과 신경과민 증상을 보여 촬영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현지 안내원의 지적에 따라 약 복용을 강권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씨는 ‘여행자보험’에도 들지 않아 사후 아무런 보험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제작진은 “공항에 늦게 도착해 수속절차에 신경쓰느라 10분이면 가입할 수 있는 여행자보험에 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성찬 사망 후 방송사와 유족 간 책임과 보상문제로 공방을 벌였다. KBS 측은 “해당 프로그램은 외주제작사가 제작을 하면 그걸 보고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계약 체결 이전에 발생한 것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프로그램의 책임 프로듀서는 “20여개 참여 외주제작사의 기획을 살펴 만들어보라고 하지만 질이 떨어지면 방영 않기로 하는 관계로 실질적으론 외주제작사와 유족 사이의 문제”라며 “다만 도의적 책임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김성찬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배우가 되고 싶어 갖은 고생을 했던 김성찬, 그는 이렇게 연기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후에도 <도전탐험대>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2005년 9월22일 배우 정정아는 이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해 남미 콜롬비아에 갔다가 길이 6m 아나콘다에 오른쪽 팔을 물렸고, 뱀의 이빨이 팔에 박혔다. 이것은 정정아의 연예생활에도 치명타가 됐다.

김성찬 사망사건이 있었음에도 시청률을 의식해 출연자들은 계속 위험에 놓였던 것이다. 결국 KBS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해당 프로그램의 폐지를 결정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