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살인사건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손아무개씨(여‧22)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광주 소재 국립대학 사범대 미술교육과 4학년으로 임용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2004년 9월14일 아침 손씨의 집은 분주했다. 아버지는 오전 7시40분에 출근했다. 손씨의 어머니는 딸의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다. 식탁 위에는 차비로 쓸 1만3천원까지 놓아두었다.

손씨는 전날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온 탓인지 늦잠을 자고 있었다. 손씨의 어머니는 테니스 동호회 월례회의가 있어 오전 8시55분쯤 집을 나섰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질 끔찍한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후 8시20분쯤 손씨의 어머니는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안팎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딸의 가방과 도시락, 디지털 카메라 등이 현관 앞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거실 전등 스위치를 켠 순간에는 공포가 밀려왔다. 집 안 곳곳에 핏자국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다고 직감한 어머니는 서둘러 딸의 방문을 열었다. 순간 기겁했다. 딸이 참혹한 모습으로 숨져 있었던 것이다. 침대에 엎드려 있었던 손씨는 하의는 속옷까지 모두 벗겨진 상태였고, 양팔은 등 뒤로 꺾여 머플러로 묶여져 있었다.

머리와 얼굴은 노란 상자 테이프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어머니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테이프를 뜯어냈지만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다급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이 119에 전화를 했고, 얼마 후 경찰과 119 구급대가 집에 도착했다.

손씨의 얼굴에는 여러군데 멍 자국이 있었다. 코피를 흘린 자국 등으로 볼 때 살해되기 전 폭행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손씨의 지갑과 지갑 속에 있던 카드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범인이 손씨의 물건을 뒤진 흔적이다. 범인은 아파트 곳곳을 뒤졌다. 안방 서랍장은 물론이고 부모의 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찰 조사결과 집에서 없어진 물건은 어머니가 차비로 놓아둔 1만3천원과 손씨의 휴대전화가 전부였다.

경찰은 손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손씨의 직접적인 사인은 ‘비구폐쇄로 인한 질식사’였다.

즉 손씨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테이프로 머리와 얼굴이 감겨졌고 이로 인해 숨을 쉬지 못해 사망했다는 것이다. 손씨의 머리에서는 7군데의 상처가 발견됐고, 몸에도 폭행 흔적이 있었다. 손씨가 범인에게 반항하다가 생긴 것들이다. 국과수는 누군가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부딪치게 해서 생긴 것으로 추정했다.

범인은 누구이며 왜 손씨를 참혹하게 살해한 것일까.

손씨가 살던 아파트는 15층짜리 13층이었다. 현관문이 번호키였기 때문에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고층이라서 범인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침입했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손씨가 외출복 차림이었고, 오전 수업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학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범인과 맞닥뜨렸을 가능성이 높다.

현관문 앞에 가방과 가방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널려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손씨가 학교에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가 범인이 흉기 등으로 위협해 강제로 다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손씨의 하의가 벗겨져 있어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했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손씨의 몸 안에서 남성의 유전자가 발견되긴 했지만 DNA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손씨의 하의가 벗겨진 것이 실제 성폭행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성폭행으로 위장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경찰은 범행 현장인 집안을 정밀 감식해 증거를 찾았다.

어지럽혀진 집안의 상태나 손씨가 반항한 흔적이 있어 범인의 지문이나 발자국 등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범인의 지문이나 족적 등은 나오지 않았다. 손씨의 몸이나 상자 테이프에서도 지문은 검출되지 않았다. 범인이 장갑을 착용했거나 닦아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범행에 사용된 머플러와 상자 테이프는 손씨의 집에 있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사라진 손씨의 휴대전화는 같은 날 오후 12시49분 광주 서구 월산동의 한 대학한방병원 인근에서 잠시 전원이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경찰은 휴대전화를 확보하는데는 실패했다.

당시 손씨가 살던 아파트에는 현관 등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렇게 경찰은 범인에 대한 증거를 아무 것도 확보하지 못했다.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도 난항에 빠졌다. 가족과 주변인, 우범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으나 사건과 연관지을 만한 단서를 얻지는 못했다. 결국 경찰은 전담반을 편성해 수사에 나섰지만 헛물만 켠 채 지금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제보는 광주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062-609-2572)으로 하면 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범인은 아파트 내부를 잘 알고 있다
피해자인 손씨가 살던 아파트는 15층짜리 13층이다. 보통 아파트를 범행대상으로 삼는 범죄자들은 고층보다는 저층을 선호한다. 고층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범행이 발각될 경우 퇴로가 길어 붙잡힐 확률이 저층보다는 훨씬 높다. 아파트 입구를 차단해버리면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이 사건의 범인은 대담하게도 고층을 노렸다. 범인이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거나 최소한 아파트 내부를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2.범인은 현장에 1시간30분 동안 머물렀다
손씨가 살해된 방에는 그녀가 쓰던 컴퓨터(PC)가 있었다. 경찰이 이 컴퓨터의 인터넷 사용기록을 살펴봤더니 오전 10시부터 11시30분까지 사용한 흔적이 나왔다. 시신 부검 결과 손씨의 사망시각이 당일 오전 9시에서 10시인 것을 감안하면 범인은 최소 1시간30분 동안 범행 현장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된다. 범인은 손씨의 시신을 침대에 둔 채 컴퓨터까지 사용할 정도로 대담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3.범인은 1~2명이다
범행 당일 아침 해당 아파트 14~15층 주민들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열어주지 않았다”고 경찰에 증언했다. 꽃집을 운영하는 위층 주민은 오전 11시쯤 출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아래층 계단에서 스포츠형 머리를 한 남성 2명을 봤다고 전했다.
이른 아침 시간대에 낯선 남성이 문을 열어달라거나 주변을 배회했다는 것은 의심이 들 만하다. 다만, 손씨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반항했던 점, 집 안에서 지문이나 족적 등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볼 때 집안에 들어간 사람은 1명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범인이 2명이라면 고층에서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볼 때 한 명은 밖에서 망을 보고, 한 명은 집안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