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파주 호텔 ‘살인 후 투신사건’ 4대 미스터리

경기도 파주시 야당역(경의중앙선) 인근에 있는 K호텔은 레지던스식 생활형 숙박시설로 지하 2층 지상 21층이다. 객실 안에는 거실과 세탁실, 주방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2024년 4월8일 오후 4시쯤 단짝 친구 사이인 A씨(남‧23)와 B씨(남‧24)가 이 호텔 21층에 투숙한다. 이들은 하루 전에 호텔을 예약했다.

객실에 들어온 남성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고양시 거주 C씨(여)에게 “가상화폐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 같이 놀자”는 메시지를 보낸다. C씨가 “알겠다”고 하자 호텔 위치를 알려준다. 남성들과 C씨는 몇 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고 지낸 사이다.

A씨는 텔레그램 채널 구인·구직 채팅방에 ‘여딜(여자 딜러) 서빙 구함’이라는 글을 올렸다. 수원에 사는 D씨(여)가 이를 보고 연락해 메시지를 보내자 한동안 채팅으로 대화를 했고, A씨는 “오후 10시까지 호텔로 오라”고 했다.

이후 오후 5시40분쯤 C씨가 먼저 도착하고, 오후 10시가 조금 안 돼 D씨가 호텔에 들어왔다. 여성들은 객실로 들어간 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4월9일 오후 C씨의 가족은 경찰서를 찾아 “8일 오후 5시쯤 친구를 만나러 나간 후 귀가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됐다”며 실종신고를 접수한다.

경찰은 오후 6시쯤 C씨가 사는 아파트를 방문해 CCTV 기록을 요청했지만 담당 관리사무소 직원이 퇴근한 뒤라 확보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성인 실종은 범죄 혐의가 뚜렷하지 않으면 가출로 분류돼 관리사무소 등 민간의 협조를 강제할 수 없다. 경찰은 10일 오전 7시에 다시 아파트를 찾았다.

경찰이 확보한 CCTV에는 C씨가 아파트 앞에서 택시에 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해당 택시를 추적해보니 C씨가 향한 곳은 파주 야당동의 K호텔이었다.

오전 10시쯤 호텔에 도착한 경찰은 A씨가 21층 객실로 향한 것을 확인한 뒤 해당 객실을 방문했다. 출입문을 두드려 경찰이라고 하자 문을 살짝 열고 고개만 내민 남성은 “A씨가 어젯밤 고양시의 한 상점가에 볼 일이 있다며 나갔다”고 말했다. 이때도 범죄혐의점이 확인되지 않아 강제진입은 어려웠다.

경찰은 C씨가 호텔을 나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1층 프런트로 내려갔다. 오전 10시35분쯤 호텔 밖에 20대 남성 2명이 추락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다. A씨와 B씨였다.

경찰이 이들이 머물던 객실에 들어가 봤더니 실종 신고된 C씨를 비롯한 20대 여성 2명이 숨진 채 있었다. 시신은 케이블 타이로 손과 목이 결박돼 있었고 청테이프로 입이 막혀 있는 등 타살 정황이 역력했다.

객실 안에서는 과도 2점과 빈소주병 4개, 다량의 케이블 타이가 발견됐다. 과도는 객실내에 비치된 것으로 주방 선반과 침대 옆에 하나씩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 있던 시신의 오른 팔에는 깊이 3cm, 길이 9cm 정도의 베인 상처가 있었다. 상처 주변에 혈흔이 없어 사후에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정황상 남성들이 여성들을 살해한 후 경찰이 찾아오자 투신한 것으로 보였다. 객실에는 약 1.5m 높이의 난간이 있는 테라스가 있었다.

호텔 외부에 설치된 CCTV에는 남성들이 객실에 투숙한 후 3~4차례 밖을 들락거렸고 손에 범행도구로 쓰인 케이블 타이가 들려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차 소견에서 피해 여성들의 사망원인을 ‘케이블 타이에 의한 목졸림’이라고 통보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이들의 휴대전화 확보에 나섰다. 남성들의 휴대전화는 객실에서 발견됐지만 여성들의 것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들이 호텔로 들어올 때는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는 모습이 CCTV에 찍혀 있었다.

이제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남성들의 휴대전화다. 경찰은 포렌식 작업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범죄 단서들이 속속 드러났다.

이 남성들은 처음부터 범행을 계획하고 여성들을 유인한 것이었다. 이들이 여성들을 불러낼 때 미끼로 던졌던 가상화폐로 돈을 벌었다거나 딜러를 구한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이들은 가상화폐로 돈을 번 적도 없고, 사람을 구할 만한 업종에서 일하지도 않았다. 또한 범행 전 휴대전화에는 ‘사람 기절’ ‘백초크(뒤에서 목을 조르는 것) 기절’ ‘자살’ 등의 단어를 검색한 기록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여성들을 호텔로 유인한 것일까. 보통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크게 두 가지다. 돈을 노리거나 성폭행 등 성적 목적이다.

지금까지는 여성들과의 원한관계, 마약이나 성범죄 흔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신 돈을 갈취할 목적으로 여성들을 호텔로 유인한 정황이 파악되는 등 금품을 노린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8일 오후 10시30분쯤, D씨의 한 지인은 ‘오빠’라고 부르며 일을 준비하다가 잘못돼 600~7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술자리에 있다가 나중에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의아했다. D씨가 평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것이다.

얼마 후 모르는 전화가 몇 차례 걸려왔고, 통화가 이뤄지자 한 남성이 “D씨가 지금 일이 잘못돼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없다”며 거절했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사망한 남성들 중 한 명이었다. 또 다른 여성 피해자인 C씨의 지인에게 금전을 요구한 정황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숨진 남성들이 객실에 들어온 여성들을 제압한 후 D씨인 척하고 돈을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모두 숨진 특이한 상황이다. 경찰 수사에도 엄연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남성들은 사전에 범행을 모의하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피해자들을 제압하는 방법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익히고, 범행도구인 청테이프와 케이블 타이 등을 미리 준비했다. 이어 범행대상인 여성들을 유인한다.

1차 대상은 홀덤펍(술을 마시면서 카드게임을 할 수 있는 곳) 아르바이트를 통해 알게 된 C씨였고, 2차 대상은 홀덤펍 구인구직 광고를 미끼로 던진 후 D씨가 연락해오자 그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범행 목적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금품을 노린 것에 무게가 실린다. 전과가 없는 20대 청년들이 공모해서 살인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연결고리가 ‘홀덤펍’이라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현행법상 술집에서 카드 게임은 할 수 있지만 게임에 이용하는 칩을 현금과 바꾸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홀덤펍이 사행성 게임장으로 변질된 것은 이미 오래다.

변변한 직업이 없는 가해 남성들이 홀덤펍을 전전하다 도박빚을 졌거나,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범행에 나섰을 수도 있다. 경찰도 남성들이 돈을 노리고 벌인 계획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성들의 금전 거래 내역과 주변인 조사를 통해 이들이 부채가 있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피해 여성들의 휴대전화도 중고폰으로 팔아넘겼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 중 한 명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곳은 고양시의 상점가다. 증거인멸이 목적이었다면 호텔 인근에 있는 호수나 저수지 등에 버리는 등의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휴대전화를 들고 고양시의 상점 밀집지역까지 갔다는 것은 현금화가 목적이 아니라면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여성의 휴대전화도 같은 방법으로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 일반적인 범죄 패턴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범행장소, 피해자 살해, 시신처리, 범행대상 등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첫째, 이번처럼 계획범죄는 완전범죄를 노린다. 이를 위해 범행 장소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유사시 도주가 용이한 곳으로 정한다. 이때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것이 도주로 확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이나 건물의 고층은 기피 1순위다. 높은 층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남의 눈에 쉽게 띄며 도주가 어렵기 때문이다. 절도범들이 범행 장소를 고층건물이 아닌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호텔의 경우에는 보안 장치가 잘돼 있어 범인들의 신원이 금방 드러날 수 있다.

그런데도 남성들은 번화가에 있는 호텔, 그것도 초고층인 21층을 범행 장소로 정했다. 경찰이 찾아와 퇴로가 막히자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는 죽는 것이 완전범죄가 된 셈이다.

둘째, 남성들은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했다고 봐야 한다. 피해 여성들 중 C씨는 이들과 아는 사이였고, D씨 또한 범행과정에서 얼굴을 봤기 때문에 살려두는 순간 붙잡힐 게 뻔했다.

애초에 금품 갈취가 목적이었다면 돈을 빼앗은 뒤에 죽이는 게 순서다. 하지만 남성들은 여성들이 호텔에 들어온 뒤 얼마지나지 않아 살해한 것으로 보여진다. 여성들이 객실에 들어가 제압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 서로 메신저를 통해 “죽일까” “그래”라고 나눈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

피해 여성들 중 D씨가 오후 10시쯤 호텔 객실에 들어온 후 30분 만인 10시30분쯤 지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는데, D씨가 아닌 남성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전화를 건 것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 남성이었다.

만약 피해자들이 살아 있었다면 흉기로 위협하는 방법 등 얼마든지 직접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게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피해자들이 이미 살해된 후였다고 봐야 한다.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었고, 이를 위해 피해자들을 유인했는데, 정작 돈을 갈취하기도 전에 죽인 것이다. 범행동기나 목적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상황이다. 다만 여성들의 시신에서 구타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흔적도 발견됐는데, 협조를 거부하거나 반항하면서 우발적으로 살해했을 수는 있다.

셋째, 피해 여성들을 살해한 후 시신을 처리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경찰이 호텔 객실로 찾아간 것은 10일 오전 10시쯤이다. 이때는 체크아웃 1시간 전이다. 오후 2시에는 다른 손님이 예약돼 있었다. 객실 예약을 연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까지 피해자들의 시신은 각각 욕실과 침대위에 있었다.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했는데도 시신은 처리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위한 비닐봉지나 여행가방 등은 따로 준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객실에 비치돼 있던 과도 2개가 있었지만 이걸로는 시신을 훼손하는 등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한 명의 시신이 욕실에 있었는데 시신 처리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지만 1시간 동안 두 명의 시신을 훼손하고 처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경찰이 도착하지 않고 이들이 호텔을 무사히 빠져나갔다고 해도 신원이 파악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넷째, 범행대상을 왜 피해 여성들로 정했느냐는 것이다. 급히 많은 돈이 필요했다면 다른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도 돈이 많지 않은 아르바이트 지망생 등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그것도 한 명은 얼굴을 알고 있던 사이였다.

피해 여성 중 한 명의 팔에 생긴 사후 자상도 의아하다. 일각에서는 성적 가학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과는 앞뒤가 맞지 않다.

이처럼 이번 사건은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사건 관련자들이 모두 숨지면서 완전한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 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