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태국 파타야 살인사건의 악마들

태국 수도 방콕에서 동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촌부리주에는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파타야가 있다. 원래는 이름없는 작은 어촌이었으나 1961년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휴가병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뤘다.

2015년 11월21일 오후 파타야 고급 리조트 단지내 주차장의 차량안에서 한국인 프로그래머 임동준씨(남‧25)의 시신이 발견된다. 차량 뒷좌석에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임씨 시신을 발견한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다.

현지 경찰은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이런 사실을 알렸고, 정확한 사망원인 파악을 위해 부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임씨는 가슴 중앙뼈 2개와 갈비뼈 7개가 골절됐고, 왼쪽 폐가 찢어진 상태였다.

사인은 뇌부종이었다. 혈액 내 성분이 혈관밖으로 빠져나와 뇌 조직 안에 고이고, 이것 때문에 뇌가 부어오르고 신경세포가 손상돼 사망에 이른 것이다. 임씨의 머리 등 온몸에는 폭행당한 흔적이 역력했는데 둔기 등으로 머리를 집중해서 맞은 것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됐다. 부검의는 오랫동안 폭행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태국 경찰이 임동준씨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그런데 시신 발견 당일 한국대사관에 임씨 사망과 관련해 신고한 두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사건 당일 숨진 임씨와 방콕에서 파타야까지 차량을 타고 함께 이동한 김형진(당시 31세)과 윤명균(당시 32세)이었다.

이들의 신고 내용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김형진은 윤씨가 임씨를 죽였다는 식으로 말하고는 직원 김아무개씨와 베트남 호치민으로 출국했다. 윤씨는 김형진이 때려 죽게했는데 자기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는 것이었고, 도주 대신 파타야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한다.

도대체 김씨와 윤씨는 임씨와 어떤 사이였기에 이국 땅에서 잔혹한 살인극을 벌인 것일까.

숨진 임동준씨는 의경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경찰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 판교신도시에 있는 중소 IT업체에 프로그래머로 취업했다. 월급이 쥐꼬리만큼이나 적다 보니 주머니 사정은 항상 쪼들렸다.

그러던 2015년 6월 지인을 통해 김형진을 소개받는다. 조직폭력조직인 성남 국제마피아 조직원이었던 김씨는 15세 때부터 범죄를 저질러 전과 14범이었다. 그는 석 달 전인 같은 해 3월부터 태국 방콕에서 불법 도박사이트 여러 개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씨는 분산돼 있던 도박사이트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개발자를 물색했다. 임씨를 소개받자 월 60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시스템 개발을 맡긴다. 임씨 외에도 웹디자이너 A씨가 여기에 참여했다.

김형진은 시스템 개발을 서둘렀으나 일은 생각만큼 빨리 진척되지 않았다. 같은 해 9월 김형진은 임씨와 A씨에게 “방콕에서 소통하자”며 “숙식과 체류비용을 지원할테니 한 2주 정도 여행하는 셈 치고 오라”고 했다. 당시 김씨는 도박사이트 운영 혐의로 지명수배가 된 상태여서 국내 입국이 어려웠다.

임씨와 A씨는 김형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태국행을 결심했고, 김씨는 이들에게 비행기표를 끊어준다. 9월7일 임씨와 A씨는 공항에서 처음 만나 동행한다. 두 사람은 3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는 무비자로 태국에 입국했고, 김형진은 이들을 자신이 머물고 있던 오피스텔로 데려간다.

이곳은 그가 운영하는 불법 도박사이트의 근거지였다. 방 3개를 임대해 하나는 본인이 쓰고, 다른 하나는 도박사이트 관리자 2명이 사용했다. 나머지 한개는 임씨와 A씨 그리고 도박사이트 직원인 김씨가 사용하도록 했다.

김씨는 두 사람을 감시하면서 식사 등을 챙겨주는 역할을 했다. 임씨가 사망 당일 동행했던 윤씨도 이곳에서 처음 만난다. 그도 전과 15범의 악질 범죄자였다.

처음 기대와는 달리 임씨와 A씨는 입국 다음날부터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된다. 감금 상태에서 24시간 프로그램 개발에 내몰렸다. 김형진과 윤씨는 프로그램 개발을 다그치면서 밤낮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주먹질과 발길질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약 한 달 뒤인 10월7일 임씨와 A씨는 함께 탈출을 시도했지만 공항에서 김형진 일당에게 붙잡힌다. 이때부터 이들에 대한 감시와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11월15일 A씨는 또다시 탈출을 감행해 성공한다.

이번에는 공항이 아니라 한국대사관에 뛰어들어가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대사관 측에 “프로그래머 한 명이 더 감금돼 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김형진 일당의 근거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면서 임씨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A씨가 탈출한 후 김씨 일당은 경찰을 피해 방콕에 있는 윤씨가 사는 곳으로 근거지로 옮긴다.

A씨가 탈출에 성공하자 김형진은 더욱 악랄해진다. 임씨의 탈출의지를 꺾기 위해 그의 휴대전화를 빼앗은 뒤 가족와 친구들의 연락처를 확보한다. 이들 중 일부에게 전화해 협박했고, 국내에 있는 임씨의 여자친구에게는 “동준이 휴대전화에 너랑 성관계 한 동영상이 있는데, 그걸 인터넷에 퍼트리겠다”며 겁을 줬다.

이런 가운데서도 임씨는 국내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처한 상황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한 번은 임씨가 자신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보낸 적도 있는데, 이걸 본 친구는 충격을 받는다. 임씨의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실핏줄도 다 터져 있었던 것이다.

임씨는 또 자신이 폭행당하는 음성을 녹음해 파일 공유사이트에 몰래 올렸다가 김형진에게 들통난다.

김씨는 임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도박사이트의 정보까지 몰래 빼돌린다고 의심해 더욱 격분했다. 그는 알루미늄 야구방망이 등으로 임씨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다. 이때문에 임씨의 온 몸은 멍투성이었고 머리가 찢어져 피와 고름이 나올 정도였다. 이도 부러지고 양쪽 귀도 찢어졌으며 목소리까지 변했다.

김형진은 임씨가 탈출을 시도한 후 그가 입국 전 자취방에서 쓰던 컴퓨터를 집요하게 찾았다. 임씨 친구들에게 컴퓨터의 행방을 물어보는 등 엄청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그 컴퓨터 안에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불법 도박사이트와 김형진에 대한 중요 정보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측됐다. 얼마 뒤 임씨 자취방에서는 이 컴퓨터의 본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같은 해 11월19일 김형진과 윤씨는 근거지를 파타야로 옮기기로 한다. 이날 두 사람과 직원 김씨는 임씨를 차량의 뒷좌석에 태웠다. 이 과정에서 잔혹한 고문이 자행된다.

김형진과 윤씨는 가슴과 복부, 머리를 목검과 야구방망이 등으로 계속해서 때렸고, 전기충격기로 임씨의 성기부위를 접촉해 화상을 입게 했다. 뿐만 아니라 흉기를 이용해 손톱을 빼버리는 잔혹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임씨는 의식을 잃은 채 파타야의 한 리조트에 도착한다.

두 사람은 임씨를 주차장의 차량에 방치해둔 채 마약을 했다. 얼마 후 차량에 숨져 있는 임씨를 발견하자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씌워놓고 현장을 떠났다.

파타야의 한 리조트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임동준씨(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이 사건은 2017년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자세히 알려졌다. 제작진은 태국 현지에서 2015년 11월15일부터 임씨가 사망하기 전인 11월19일 자정 무렵까지 윤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촬영된 영상을 입수해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임씨의 참혹했던 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심한 폭행을 당한 듯 얼굴이 상당히 부어있고, 머리에는 붕태를 감고 있었다. 붕대를 풀었을 때는 빡빡깎은 머리에 여러 개의 흉터가 보였고, 또 어느 날은 머리 군데군데에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김씨 일당이 임씨의 머리를 집중해서 수시로 때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날에는 머리에 더 많은 붕대를 감고 있었다.

임동준씨 시신이 발견된 후 경찰청은 인터폴에 김형진의 적색수배를 신청한다. 베트남 공안부에는 국제공조 수사를 요청하고, 김씨의 국내 연고선 등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김씨가 베트남의 한 호텔 카지노에 자주 출몰한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한국와 베트남 경찰이 합동 검거작전을 폈으나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

이후 경찰은 김씨가 베트남의 한 한국 식당 건물에 은신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호치민 총영사관의 경찰 영사와 현지 공안의 공조수사로 검거하는데 성공한다. 김씨가 도피 행각을 벌인 지 2년 4개월 만이다.

김씨는 2018년 4월 국내로 송환된다. 당시 김형진은 질문하는 기자들을 째려보며 공격적으로 대응했고 “유족에게 할 말이 없냐”고 물어보자 비웃는 등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프로그래머 임동준씨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되고 있는 김형진 (경찰청 제공).

김씨는 국내에서 두 가지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았다. 사건 이후 김씨와 윤씨는 서로 책임을 떠넘겼지만 재판부는 김씨를 주범, 윤씨를 공범으로 판단하고 형량을 정했다.

재판부는 김형진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감금)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4년6개월, 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는 징역 17년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령했다. 김씨는 여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형량을 확정했다. 이로써 김형진은 모두 21년6개월을 복역해야 한다.

공범 윤씨는 태국 경찰에 자수한 2015년 현지 법원에서 살인 및 마약 판매·복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현지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22년 4월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윤씨는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14년이 선고됐고,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 명령도 받았다. 다만 태국에서 복역한 4년6개월을 징역 기간에 포함하도록 했다. 또 다른 공범인 직원 김씨는 2015년 12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송환돼 사체 유기 혐의로 1년간 복역 후 출소했다.

영화 <범죄도시4> 스틸컷(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사건 이후 불법 도박사이트 조직의 노예 프로그래머 모집이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원찬희 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팀장(경감)은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프로그래머 확보를 위해 좋은 근무조건과 수익을 내세워 아르바이트 모집 사이트 등을 통해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며 “대부분 함정일 수 있으니 여기에 빠져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또 2024년 4월24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4’의 모티브가 됐다. 영화는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을 운영하는 백창기(김무열 분)를 응징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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