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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만봉천 간호사 살인사건

2000년 8월25일 전남 나주군 세지면 오봉리 만봉천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였다.

시신은 퉁퉁 부어오르고 부패 정도가 심해 육안으로는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침 폭우가 끝난 시점이라 불어난 물이 흐르는 상황에서 시체는 계속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경찰은 지문을 대조한 끝에 시신의 신원을 파악했다.

8월18일에 실종신고가 된 나주병원 간호사인 이아무개씨(22)였다.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의 부검을 의뢰했다.

하지만 부패가 워낙 심해 사망원인을 파악하는게 불가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였다. 숨진 이씨의 가족과 지인들은 피해자가 자살할 성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프로파일러도 타살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피해자 이씨의 집은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서 상류쪽으로 3.2km 떨어진 황치마을이다.

그 해 광주의 한 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나주병원 정형외과 간호사로 취업했다. 그녀는 병원 옆에서 혼자 자취를 했고,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모를 찾아와 농삿일 등을 도왔다.

이씨는 전날 야근을 마치고 8월18일 낮에 집에 왔다. 이날 저녁 아버지 이아무개씨(52)가 밖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아버지 이씨는 아내에게 큰 소리를 내다가 다툼이 있었다.

딸 이씨는 아버지의 손목을 이끌고 마을에서 50여m 떨어진 정자 우산각으로 향했다. 아버지를 진정시키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술에 취한 아버지 이씨는 정자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딸 이씨는 만봉천쪽으로 걸어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정자에서 잠을 자던 아버지 이씨는 0시20분쯤에야 잠을 깼다. 집에 딸이 없자 개천을 따라 난 길로 내려가다 택시를 타고 나주시내 자취집으로 갔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연락했지만, 딸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씨 부부는 부랴부랴 딸의 자취방에도 가봤지만 그곳에도 없었다. 불안해진 부부는 파출소에 찾아가 실종신고를 하고 딸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실종 7일 만에 3.2km 떨어진 오봉리 청용교 밑에서 시신으로 떠올랐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것은 이 마을 초등학생이었다. 개천 풀더미에 걸려 있는 시신을 발견하고 마을 어른을 불러 시신으로 확인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살인사건으로 보고 1000여명이 넘는 경찰력을 동원해 옷가지 등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하지만 실종 당시 피해자가 입고 나갔던 반바지와 하얀티셔츠,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등은 찾을 수가 없었다.

피해자 지인과 병원 동료 등을 통해 사건의 단서를 찾으려고 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한때 자살 가능성도 염두에 뒀으나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있었던 아버지 이씨도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혐의점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시신이 발견된 지 약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수사는 답보 상태였다. 그러던 9월16일 오후 2시쯤 나주경찰서 형사계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영산포에 사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하고 6월부터 동거를 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살인을 한 지인을 만나고 왔다. 내내 몸을 부르르 떨고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 아랫마을에 사는 아가씨를 목졸라 죽였다고 했다더라”고 말하고는 그냥 끊었다.

경찰은 즉각 발신지 추적에 나섰고 ‘광주’라는 것을 알아냈다. 제보자의 신원도 확인했다. 그녀는 함아무개씨(26)였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이불을 뒤집어쓸 정도로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 제보했다고 진술했다. 남자친구 곽아무개씨(27)를 수사본부로 불러 함씨가 말한 내용을 확인했다.

그는 고향 세지면에서 멜론농사 등을 지으며 나주시에 마련한 아파트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곽씨의 말은 더 구체적이었다. “고종사촌 형인 장아무개(35)가 간호사를 죽였다고 말했다. 피해자 집에서 위쪽으로 3㎞ 정도 가는 마을에 살고 있다. 형이 트럭을 운전하며 달빛 훤한 천변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잘 아는 이씨 집 딸이 혼자 내려오는 것으로 보고 목을 졸라 죽였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 옷을 벗긴 후 개천 풀섶 물속에 밀어넣고, 신발과 옷은 형 집 앞 냇가에 숨겨놨다고 했다. 괴로워서 말했다면서 비밀을 지켜달고 했다.”

곽씨의 말은 피해자의 상황과 거의 일치했다. 장씨의 경우 트럭을 몰고 다니며 주된 운전 동선에 만봉천 일대가 있었다. 경찰은 범인을 다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이 경찰서에 불려갔다는 말을 들은 장씨는 자취를 감췄다. 경찰은 그를 찾기 위해 모든 수사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6개월 후 영광의 한 모텔에 숨어있던 그를 찾아냈다. 그는 당시 상해·폭력 등 전과 10범이었다.

경찰은 사촌 동생 곽씨가 말한 것을 토대로 범행을 집중 추궁했다. 하지만 장씨는 곽씨가 말한 모든 것을 부정했다. 경찰은 진술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거짓’ 반응이 나왔다. 문제는 장씨가 범인이라는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이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일단 그를 풀어주고 물증을 찾았지만 더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 결국 수사도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다.

가족 수사과정에서 희생자 어머니로부터 딸이 집을 나간 이틀 후 오전 10시쯤 전화 한통화가 걸려왔다는 진술이 나왔다. 당시 충격을 받고 말할 틈이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누군가 전화를 해왔는데, 숨 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딸이냐고 해도 대답을 하지 않고 끊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단서가 될 뻔 했지만 통화기록보관기간 6개월을 넘긴 탓에 무용지물이 됐다.

사건발생 16년 뒤인 2016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장씨와 통화했다. 그는 사건에 대해 언급하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왜 방송국에서 조사를 한다는 거냐”며 화를 내는가 하면 2차 전화시도를 해보니 “당신이 수사관이야 뭐야 얘기 안하고 싶다고 ○○ 진짜”라고 욕설까지 해가면서 격렬하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제보는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061-289-2472)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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