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한 김씨 왕조(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여인들

북한은 김일성이 집권한 이래 김정은까지 3대 세습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왕조 국가다.

김일성 왕가에도 여러 여성들이 등장한다. 김일성은 살아생전에 두 명의 부인을 뒀다. 그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김정일은 무려 다섯 명의 여자들이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그렇다.

김일성 왕가의 3대 세급 결정판인 김정은의 현재까지 공식 부인은 리설주 한 명이다.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북한 최고 권력자들 ‘퍼스트레이디’의 명암도 엇갈렸다. 때론 암투를 벌이다가 최고 권력자의 눈밖에 나서 유랑생활을 하기도 했다.

김씨 왕조 여인들과 그들의 엇갈린 운명을 살펴봤다.

첫째 부인 김정숙

김일성은 생전에 두 명의 부인을 뒀다.

첫째인 김정숙은 함경북도 회령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남편 김일성과 항일 유격대 활동을 함께한 동지다. 김일성 부대가 일제의 토벌을 피해 소련으로 이동할 때 김일성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큰아들 김정일을 낳았다.

하지만 김정숙은 1949년 9월에 아이를 낳다가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생전에 ‘권력다운 권력’을 누려보지 못했다. 김일성은 북한 정권 출범 후 이런 김정숙을 신격화했으나 그녀의 일가 척들을 중용 했다는 기록은 없다.

둘째 부인 김성애

김성애는 원래 김일성의 비서 출신이다.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을 낳은 후인 1963년에 김일성과 정식으로 결혼했다. 김성애는 여성 운동을 하면서 권력 전반에 나섰다. 조선민주여성동맹위원장을 거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까지 올랐다.

여성동맹위원장은 북한의 모든 여성에 대한 감시·감독을 전담하는 막강한 자리였다.

김일성의 동생이자 김성애의 시동생인 김영주는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며 당의 핵심을 장악했다.

김정일이 등장하기 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2인자’였다. 김영주와 김성애는 서로의 힘이 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은 끊임없이 권력 암투를 벌였다.

김성애는 자신의 아들인 김평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반면 김정일을 후계구도에서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정일은 그런 김성애를 증오했다.

김성애의 그늘에서 자라면서도 이복형제들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여 결국 승리하게 된다. 1974년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김성애와 측근들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통해 처남들의 비리를 조사한 후 직위해제하고 연금시켰다. 김성애의 추종자들은 모두 농촌이나 탄광으로 쫓겨 갔다.

당시 김성애와 남동생 김성갑 등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인물들은 모조리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고 전해진다. 김성애는 여맹위원장 자리는 간신히 유지했으나, 이후 공식적인 대외 활동에는 제약을 받았다.

김성애는 김일성이 사망한 후에는 곁가지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김정일은 1998년 7월 김성애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시키면서 권력에서 밀어냈다. 김성애의 핵심 세력인 조선민주주의여성동맹도 무력화시켰다.

여맹의 핵심 간부들은 지방으로 축출했다. 중앙 조직 일부만 형식상 존치한 채 지방의 하부 말단까지 해산시켰다. 김성애의 팔과 다리를 완전히 잘라버린 것이다. 북한 당국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신세로 전락했다가 2014년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부인 홍일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무려 다섯 명의 부인을 뒀다. 조강지처는 동갑내기인 홍일천이다. 김위원장은 1966년 홍일천과 결혼해 딸 김혜경을 낳았으나 3년 후 이혼했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홍일천은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문학부를 졸업한 재원이다. 그는 김정일과 이혼한 후 1980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됐고, 정무원 보통교육부 부부장을 거쳐 현재 김형직사범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1993년 1월부터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조선측 본부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부인 성혜림

성혜림은 북한의 유명 배우 출신이다.

김정일보다 다섯 살 연상이다. 그는 원래 월북 작가 이기영의 아들인 이평의 부인이었다. 김정일과 가깝게 지내다가 남편과 이혼하고, 1969년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사실상 김정일이 유부녀인 성혜림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빼앗은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김정남이다. 그러나 성혜림은 ‘이혼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정식 부인이 되지 못했다. 김일성도 그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비운을 맞게 된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강요에 의해 조선로동당 간부의 딸인 김영숙과 결혼했다. 김정일의 관심에서 멀어진 성혜림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1974년 요양차 러시아 모스크바에 머물렀다.

정식 부인 자리를 김영숙에게 내주면서 더는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성혜림은 1996년 2월에 서방으로 망명한 뒤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 2002년 5월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언니인 성혜랑은 1996년 미국으로 망명해 살고 있으며, 아들 이한영은 한국에 망명해서 살다가 암살당했다.

왼쪽부터 홍일천, 성혜림, 고용희, 김옥.

셋째 부인 김영숙

김정일의 셋째 부인은 당 선전·선동부의 타자수 출신인 김영숙이다.

김영숙은 혁명가 집안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해 부친이 청진사범대학 학장이라는 설도 있으나 정확히 확인된 것은 없다.

김영숙은 김 위원장의 유일한 공식 부인이었으나 역시 불행한 전철을 밟았다.

아들을 낳지 못해 일찍부터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뒷방 마님’ 신세가 됐다. 김영숙은 김정일과의 사이에 김설송과 김춘송을 뒀다. 현재 북한 호위사령부 초대소에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부인 고용희

고용희는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이다.

김정일의 부인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5년쯤부터 암으로 사망한 2004년까지 동거하며 사실상 ‘안주인’ 역할을 했다. 1998년부터는 군부대 등 현지 시찰을 동행하는 등 김정일의 사랑이 각별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친·인척이 권력에 진입했다고 알려진 것은 없다. 고용희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아들 정철·정은, 딸 여정을 낳았다. 고용희의 동생이자 김정은의 이모인 고용숙은 2016년 10월 스위스를 통해 미국으로 망명해 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성혜림의 아들인 김정남은 한때 유력한 후계자였다. 그러나 후계 다툼 와중에서 이복동생인 김정은에게 밀려났다. 2013년 처형당한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후원자를 자처하며 김정남을 옹립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이 망명한 것 등의 행적이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황태자에서 밀려난 김정남은 작은아버지인 김평일의 전철을 밟았다. 2009년 이후 계속해서 해외를 떠돌며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그러다 결국 2017년 2월14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

다섯째 부인 김옥

김옥은 1980년 초반부터 서기실(비서실) 과장으로 근무하며 김정일을 보좌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내연 관계로 발전한 것은 고용희가 암으로 사망한 2004년 이후다. 김옥을 다섯째 부인으로 추천한 사람이 고용희라고 한다.

그는 죽기 직전 김옥에게 자신의 아들인 정철과 정은의 뒤를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김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 최측근으로 해외 국빈 방문 등에 동행했다.

북한의 정식 안주인이 된 후 그녀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의 부인들과는 여러 모로 차원이 달랐다. 김옥은 김 위원장보다 나이가 스물 두 살이 적다. 그녀는 단순한 안주인 역할에 그치지 않고, ‘국방위원회 과장’이라는 직책도 맡았다. 하지만 김정일 사후의 행보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리설주

2012년 7월 북한의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의 부인이 ‘리설주’라고 최초로 언급했다. 우리 정부 당국은 사전에 이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우리 언론도 김정은을 수행하는 여성을 ‘의문의 여성’이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그 후 일본의 교도통신은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과 리설주가 2009년 결혼했고, 2010년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013년 방북했던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에 의해 ‘김주애’라는 이름의 딸을 출산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 뒤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리설주는 가수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 대학원까지 졸업한 엘리트다. 그녀의 본가는 청진시 수남 구역으로, 아버지는 청진시 대학 교원이며 어머니는 수남구역 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인민보안부 협주단 등에서 예술인으로 활동한 그녀는 김정은과 결혼하면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6개월 과정 퍼스트레이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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