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사건

남원 서희영양 실종사건

전북 남원시 향교동에 살던 서희영양(11)은 서기원 (사)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의 외동딸이다.

1994년 4월27일 오후 서양은 학교에 다녀온 뒤 “놀다 오겠다”며 집앞 놀이터로 달려나갔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서양은 해가 진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학원 친구 집에 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 서씨는 딸이 귀가하지 않자 곧바로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그러나 경찰의 태도는 한심했다.

즉시 아이를 찾기 위해 나서지 않고 3일 정도 지켜보자고 했다. 실종사건의 경우 보통 미취학 아동은 3시간, 청소년은 48시간이 골든타임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장기화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경찰이 3일을 지켜보자는 것은 장기실종이 될 때까지 방치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서양의 경우 가출 징후가 없었기 때문에 유괴나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경찰은 무사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자 아버지 서씨가 직접 움직였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한 방송사를 찾아가 “딸을 찾는데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서씨가 애타게 딸을 찾는 사연은 실종 4일 뒤인 5월1일 전파를 탔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제보가 들어왔으나 대부분 장난 전화였다. 방송에 보도된 후에야 경찰도 적극적으로 찾아나섰지만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서희영양은 그렇게 사라졌고,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이후 아버지 서씨는 남원에서 하던 작은 여행사와 골프연습장 사업도 정리하고 딸을 찾는데 집중했다. 실종 전단지를 제작하고 플래카드도 걸고, 전국 방방곡곡의 시설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어디에도 딸의 흔적은 없었다.

고통의 시간이 밀려왔다. 딸을 잃었다는 자책감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서씨의 어머니는 이런 아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이 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서씨는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다.

공권력에만 의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민간이 주도한 실종단체 설립에 참여했다. 현재 그는 (사)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를 맡고 있고, 지금까지 딸 희영이 뿐 아니라 다른 실종 아이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서희영양의 신체특징은 왼쪽 눈 위에 넘어져서 다친 흉터가 있으며 양쪽 귀 윗쪽에 옴폭 파인 자국이 있다. 귀 위쪽에 있는 자국은 일종의 유전으로 아버지 서씨의 한쪽 귀 윗부분에도 똑같은 자국이 있다.

제보는 (사)실종아동찾기협회, 02-774-0182나 112, 또는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182)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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