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횡령

동아건설 자금부장 1천898억원 횡령사건

2009년 7월8일 동아건설 자금부장인 박상두(48)가 휴가를 낸 후 자취를 감췄다.

출근 날짜가 됐는데도 박부장이 나오지 않자 회사는 그의 업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거액의 횡령사실이 드러났다. 회사가 은행에 맡긴 채무 변제자금 1천567억원 중 898억원을 빼낸 것이 확인됐다.

박부장의 공범인 유 아무개 과장(37)은 회사측의 신고로 회사에서 체포됐다.

이렇게 해서 거액의 횡령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회사는 박부장을 해고처리했다. 공범이 체포되면서 박 전 부장의 신병 확보는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행방은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졌다. 이때부터 해외 밀입국 설 등이 끊이지 않았다. 출입국 기록에는 박 전 부장이 해외로 빠져나간 기록은 없었다. 위조 여권을 만든 후 중국이나 필리핀 등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경찰과 박부장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됐고, 여기에 동아건설도 가세했다.

도주한 지 열흘이 지나도 행방이 묘연하자 동아건설은 ‘현상 수배’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회사 임직원들이 여름 휴가비 중 일부를 십시일반 보태서 3억원을 만들었다. 회사측은 수배 전단지 5만장을 따로 제작했다. 서울 시내 주요 역과 터미널 등에서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수배 전단지를 돌렸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박 전 부장의 별장 입구에도 회사 직원들이 붙여놓은 현상 수배 전단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동아건설 본사(프라임센터 내) 1층 로비 곳곳에도 수배 전단을 붙였다.

박 전 부장의 집이 있는 송파구 풍납동의 ㅎ아파트에는 동아건설 직원들이 밤낮으로 잠복 근무를 했다. 동아건설이 박 전 부장의 행방을 찾는 데 전사적으로 나선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양평군 박 전 부장의 별장 입구에도 회사 직원들이 수배 전단을 붙여놓았다.

경찰과 회사측의 끈질긴 추적에 드디어 꼬리가 잡혔다. 박 전 부장은 3개월 여간 잠적하다 추석을 앞두고 하남에 있는 식당에서 부인을 만나다 검거됐다.

경찰은 박 전부장의 도피를 도운 회사 동료 권 아무개씨(32)를 불구속 입건하고, 박 전 부장의 부인 송 아무개씨(42)를 남편이 횡령한 돈을 숨긴 혐의로 구속했다.

박상두는 신도 놀랄 만한 횡령의 달인이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회사 공금을 빼돌리면서 주위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였다. 횡령 액수도 구속 전에는 898억원이었다가 구속 후 1천억원이 불어났다. 이렇게 해서 박 전 부장의 전체 횡령액은 1천898억원이다.

총 56차례에 걸쳐 하나은행 회사예치금(477억원), 회사 계좌(523억원), 법원 공탁금(898억원)을 빼돌렸다. 그중 통장 돌려막기에 사용한 900억원 정도를 제외하면, 실제 박 전 부장이 개인 주머니에 착복한 금액은 1천억원 정도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회사의 금고지기인 박 전 부장은 왜 회사 공금을 빼돌리게 되었을까. 그는 1978년 서울의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고졸 특채로 동아건설에 입사했다. 입사 후에는 대부분 경리·회계·자금 부서에서 일했다.

2005년 동아건설이 파산되자 자금부로 발령받았다. 박 전 부장은 경찰에서 “회사가 부도가 나서 어렵다 보니까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회사 돈을 잠시 유용한 뒤 나중에 살아갈 수 있는 돈만 벌면 안 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부장은 ‘바늘 도둑’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회사 돈을 잠시 쓰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아예 빼내기로 마음먹는다. 원인은 ‘도박 중독’이었다. 박 전 부장은 2001년부터 주식과 경마로 큰 손실을 보게 됐다.

도박 밑천이 바닥나자 회사 공금으로 눈을 돌렸다. 자금 부분에 빠삭한 데다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했기 때문에 회사 돈은 박부장의 주머닛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첫 번째 노린 회사 돈은 회사 통장이었다. 이를 위해 덕수상고 선배인 하나은행 을지로 지점 김 아무개 차장(50)을 끌어들였다.

그가 김차장에게 당근으로 제시한 것은 ‘예치금 유치’였다. 박 전 부장은 “회사 자금을 하나은행에 집중 예치할 테니 그 조건으로 건설공제조합 예치금 계좌를 서류상으로만 만들고 전산에는 입력하지 말아달라.

이 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올린 뒤 다시 예치하면 된다”라며 안심시켰다. 이렇게 되면 돈을 출금해도 전산에는 남지 않기 때문에 거액이 빠져나가도 알 수 없었다.

은행원에게 수백억 원의 예치금은 곧바로 승진과 연결된다. 김차장은 다소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당장 들어올 거액의 예치금에 더 마음이 끌렸다. 한번 마음이 굳혀지자 김차장은 완전 범죄를 노렸다.

박 전 부장을 돕기 위해 해당 계좌가 출금이 제한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전산상으로는 입출금이 가능하도록 했다. 박 전 부장은 이런 방법으로 24차례에 걸쳐 건설공제조합에 예치된 하자보수 보증금 477억원을 빼돌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타났다. 김차장이 본사 여신관리부로 전근하자 더 이상 건설공제조합 예치금에 손을 대기 힘들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회사 운영 자금에 손을 뻗쳤다. 여기에는 회사 같은 부서의 유 아무개 과장(37)을 끌어들였다. 2008년 6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법인 인감을 미리 찍어둔 예금청구서를 위조해 회사 운영 자금 계좌에서 24차례에 걸쳐 523억원을 횡령했다.

박 전 부장의 횡령은 거침없었다. 급기야 신한은행의 채무 변제금 예치 계좌에 손을 댔다. 박 전 부장이 신탁재산을 빼돌리는 수법은 간단했다. 회사 인감을 위조한 후 하나은행 을지로지점과 시화지점에 동아건설 명의의 위조 계좌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신한은행 신탁부에 수익자를 지정하고 위조 계좌에 돈을 입금하도록 했다. 신한은행은 박 전 부장이 지정한 수익자의 계좌로 돈을 입금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총 여덟 차례에 걸쳐 898억원을 빼돌릴 수 있었다.

횡령 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박 전 부장은 경찰에서 “도박과 주식 투자, 경마 등에 탕진해 현재 빈털털이”라고 진술했다.

주식 투자 손실(150억원), 경마(200억원), 사설 카지노(250억원), 마카오 카지노(100억원), 강원랜드(190억원), 포커 도박(50억원) 등에 940억원을 썼다고 진술했다. 경기도 하남에 있는 200여평 규모의 시가 16억원에 달하는 별장을 구입하고, 양수리에 또 다른 별장을 구입했으며, 고급 외제 승용차 2대를 굴리고 다녔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박 전 부장의 진술일 뿐이다. 실제로 그가 어디에서 혹은 어디에다 얼마를 썼는지는 박 전 부장 외에는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경찰은 박 전 부장의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수십 차례에 걸쳐 강원랜드에 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박 전 부장은 강원랜드에서는 ‘강남 박회장’으로 불릴 정도로 큰 손이었다.

2억원 이상을 칩으로 교환해야 출입할 수 있는 VVIP룸을 자주 드나들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박 전 부장이 카지노에서 환전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2천만원 이하의 돈을 칩으로 바꾸거나, 게임을 하고 남은 칩을 다시 돈으로 환전할 때는 교환하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는다. 박 전 부장은 이러한 맹점을 이용해 수표를 칩으로 교환한 뒤 다시 칩을 주고 현금으로 받는 수법으로 자금을 세탁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 50명을 고용해서 이런 방식으로 돈을 세탁했다면 10억원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이럴 경우 추적은 불가능하다.

환치기를 통해 돈을 세탁했을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부장은 회계, 경리, 자금 쪽에서만 30여 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는 전문가나 다름없다. 위험 부담이 높은 사채시장을 이용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사채시장에 거액이 나왔을 경우 바로 경찰 정보망에 노출돼 추적당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환치기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이다.

환치기 조직은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경찰 정보망에 노출될 위험도 그만큼 적다. 거액을 세탁할 경우 대부분 환치기 수법을 이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 전 부장이 알고 있던 비선 루트가 존재할 수도 있다.

박 전 부장은 이런 방식으로 상당한 재산을 은닉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그가 횡령한 후 사들인 재산이 모두 가·차명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선 그가 구입한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에 있는 660㎡(약 200평)의 저택(시가 16억원)은 구속된 부인 송씨 명의로 돼 있었다. 또, 지난 2007년에 구입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 있는 별장(시가 6억원)은 소유자가 박씨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였다.

박 전 부장은 또 부인 몰래 권아무개씨(32)를 내연녀로 두고 있었다. 권씨는 동아건설 자금부에서 박씨와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일했으며 2006년 회사를 그만뒀다.

박 전 부장은 잠적한 후 약 두 달 동안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권씨의 빌라에서 숨어 지냈다. 약 257㎡(78평) 규모의 빌라는 당시 시가 15억원 정도의 고급 빌라로 전세금 3억3천만원을 주고 임대했다.

임대자는 내연녀 권씨가 아닌 박 전 부장의 어머니였다. 박 전 부장이 마지막으로 은신했던 송파구 방이동의 빌라(60㎡)에는 현금 7억원을 숨겨두고 도피 자금으로 사용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박 전 부장은 횡령한 돈 상당액을 감쪽같이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박 전 부장은 빼돌린 돈의 일부를 포도밭에 파묻어 두었다가 들통 나기도 했다. 박 전 부장은 부인 송씨의 형부를 시켜 보험증권과 도장은 경기 이천시 자신의 농장 안 아카시아 나무 밑에, 나머지 현금과 수표 3억4천500만 원은 동네 친구의 포도밭에 묻었다.

2010년 3월 <동아일보>는 박 전 부장의 옥중편지를 입수해 공개했다. 여기에는 횡령 자금 중 일부를 박씨가 아직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은닉자금은 밝혀내지 못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으로 기소된 박 전 부장에 대해 검찰은 “죄질이 나쁜 데다 피고인이 출소 이후를 대비해 자금을 숨겨뒀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무기징역 및 벌금 100억 원을 구형했다.

이에 법원은 징역 22년6월과 벌금 100억원을 선고했다. 부인 송씨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박 전 부장은 72세가 돼야 출소할 수 있다.

결국 박 전 부장과 그의 부인의 흥청망청 호화 생활은 교도소행으로 끝이 났다. 어쩌면 교도소에서도 꼭꼭 숨겨놓은 돈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호화 별장에서 황제처럼 살았다

그는 황제를 꿈꾸었다. 그리고 황제처럼 살았다. 박상두는 횡령을 시작한 2004년 이후 경기도 하남시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고급 주택과 호화 별장을 구입했다. 이곳에서 그는 횡령한 돈으로 가족들과 함께 화려하게 살았다.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의 저택(16억원)과 양평 별장(6억원)은 여느 재벌 회장 집 부럽지 않다. 하남시 저택은 잔디가 잘 가꾸어진 정원이 소나무와 석등으로 단장되어 있고, 차고에는 고급 외제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정원 한쪽에는 박 전 부장이 가족들과 함께 앉았을 것으로 보이는 흰색 티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거실에는 고급 양주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고, 최고급 와인이 가득한 와인 냉장고는 박 전 부장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내는 일반 가정에서는 볼 수 없는 고급 가구들로 갖추어져 있었다.

경기도 양평군 목양리의 별장은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이었다. 온갖 정원수들로 뒤덮여 있는 것이,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은 별장이었다. 별장 건물 구조를 보면 여느 별장과 마찬가지로 앞 부분은 통유리로 만들었다. 실내에서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구조다.

박 전 부장과 그의 가족들은 하남시 저택과 목왕리 별장을 오가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박 전 부장은 또 부인 몰래 열여섯 살 연하의 회사 동료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호화 빌라를 임대해 이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꿈같은 생활이 지금은 ‘하룻밤의 꿈’이 되고 말았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