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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선미 남편 청부 살인사건

부산 출신인 배우 송선미는 1996년 SBS ‘슈퍼 엘리트 모델 선발대회’ 2위로 입상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1997년 SBS 드라마 <모델>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들어선다. 1998년에는 인기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열연했다.

1998년 개봉된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과 2001년에 개봉된 <두사부일체>에도 캐스팅 되면서 활동 무대를 넓혔다. 이외에도 많은 드라마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2001년에는 지인 소개로 만난 영화‧미술감독 출신의 3살 연상인 고아무개씨와 1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동안 아이가 없었으나 결혼 8년 만에 임신에 성공하며 2015년 딸을 출산했다.

그러나 2년 후 송선미 남편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2017년 8월21일 오전 11시40분쯤,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 회의실에서 송선미의 남편인 고아무개씨(44)와 고씨의 매형인 변호사 A씨, 그리고 조아무개씨(28) 3명이 만나고 있었다. 조씨는 고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꾸만 시선을 문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문을 잠그더니 쇼핑백에서 회칼을 꺼내 고씨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급소를 찔린 고씨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숨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A씨는 조씨가 다가오자 의자를 들어 방어하며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했다. 조씨는 도망치는 대신 A씨에게 다가가 “네가 더 나쁜 놈이다”라고 말했지만 흉기를 휘두르지는 않았다.

직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이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조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고씨의 민사소송에 필요한 정보를 대가로 2억원을 받기로 했으나 1000만원 밖에 받지 못해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조씨의 말을 그대로 믿고 ‘정보제공 대가에 대한 금액 다툼으로 인한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재산분쟁 과정에서 벌어진 치밀한 청부 살해였던 것이다. 결국은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송선미 남편 고씨의 외조부 곽씨(99)는 재일교포 사업가였다. 충남 금산 출신인 그는 10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인삼, 철물 사업을 통해 기반을 잡았고, 건설사를 운영하며 교토와 오사카에서 호텔 체인점과 파친코 사업 등으로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형성했다.

국내에는 서울 등 수도권 인근에 수백억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에 있는 부인 사이에서 12명의 자녀를 뒀다. 곽씨는 한국의 조강지처와는 1남1녀를 낳았다. 친손자인 곽아무개씨(38)와 외손자인 고씨(송선미 남편)는 어울려 다니며 사업도 같이하는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재산 문제로 틀어지면서 하루아침에 원수가 된다.

곽씨의 나이가 90이 넘자 자녀들은 상속 문제에 민감해졌다, 2016년 곽씨가 일본에 있는 다른 자손들에게 호텔과 파친코 지분 51%를 상속하자 한국에 있던 큰아들 곽씨(73)와 아들은 국내에 있는 재산이라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먼 친척인 법무사 김아무개씨(64)를 끌어들인다.

여기에는 손자 곽씨가 주도적으로 나섰다. 곽씨는 김씨를 통해 조부의 국내 부동산 현황을 파악한 후 이것의 소유권을 자신들 앞으로 돌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2006년 8월18일, 조부가 한국에 오자 곽씨는 친동생과 함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저택으로 찾아갔다. 세 사람은 와인을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갔고, 곽씨가 “한국에 있는 수원, 대전, 화성 등지에 있는 땅들을 넘겨 달라”고 하자, 조부는 “(다른 손주들과) 나눠서 해라”, “(상속을 위한) 회사를 세워봐라” 등의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곽씨는 조부가 술에 취해 잠들자 금고에서 몰래 인감도장을 꺼내 미리 준비해 간 부동산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곽씨는 다음 날에 부친과 법무사 김씨를 동행해 다시 조부를 찾아갔다. 김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의사행세를 하며 막 잠에서 깬 조부의 맥을 짚고 건강 상태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이것 또한 각본에 짜인 것이다.

곽씨는 이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조부가 곽씨 부자에게 국내 전 재산을 증여한다는 내용을 법무사가 확인하는 것처럼 꾸몄다.

곽씨는 조부의 은행계좌에 있던 3억여 원도 이체해 취·등록세 납부 등 부동산 이전 비용으로 사용했다. 곽씨는 이런 수법으로 680억원대 부동산에 대한 증여계약서를 위조해 토지등기부등본을 자신의 명의로 이전등기 했다.

하지만 곽씨 부자의 범행은 곧 다른 형제들도 알게 된다.

2016년 12월 곽씨의 큰딸은 아들 고씨(송선미 남편)를 데리고 일본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여기서 곽씨는 큰 아들 부자의 소행을 듣고는 격노한다. 그는 외손자 고씨의 도움을 받아 곽씨 부자 등을 상대로 사문서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고씨는 재산분쟁 관련 모든 민·형사 소송은 매형인 A변호사에게 맡겼다.

이때부터 친손자 곽씨와 외손자 고씨의 갈등이 시작된다. 고씨는 곽씨 부자가 조부를 만나지 못하게 차단하고 곽씨는 고씨를 경계하며 수족처럼 부리던 조아무개씨(28‧무직)에게 감시하도록 지시한다.

두 사람은 2012년 일본 소재의 한 어학원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고, 2017년 5월부터 오피스텔에서 함께 동거했다. 곽씨는 조씨에게 월 한도 330만원의 신용카드를 줘서 쓰도록 했다.

같은해 7월 경찰은 곽씨 부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다툴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경찰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구속 직전에 풀려난 곽씨는 고씨에 대한 감정이 극에 달했다. 결국 자신의 욕심을 가로막는 고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곽씨는 조씨에게 “고씨를 죽여야겠다. 네가 해주면 현금 20억원을 주겠다. 가족 생계와 변호사 비용도 책임지겠다”고 제안했다.

곽씨는 조씨에게 고씨 뿐만 아니라 고씨의 매형이자 조부 재산 관련 소송을 담당하는 A변호사도 죽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조씨는 형량이 높아질 것을 우려해 “변호사를 죽이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곽씨는 “겁이라도 먹게 변호사 앞에서 고씨를 죽여라”고 말했다.

조씨는 한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곽씨는 “현금은 준비돼 있는데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금은 줄 수 없다”며 “(범행 후) 필리핀 가서 살면 된다”는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 범행을 재촉했다. 조씨는 곽씨의 청부살인을 수락하지만 자신이 직접하는 것에는 망설였다. 대신 흥신소나 중국 불법체류자들을 물색했다.

이를 위해 인터넷에 ‘청부살인 방법’ ‘암살 방식’ 등을 검색하며 범행을 모색했다.

조씨가 속도를 내지 않자 곽씨는 “믿을 사람은 너 밖에 없다”며 조씨가 직접 범행에 나설 것을 독려했고, 조씨도 자신이 직접 범행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씨는 고씨에게 연락해 “곽씨에게 버림받았다. 민사소송 등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겠다”며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8월19일 조씨는 고씨를 만나 자료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를 고씨에게 건네고 그 대가로 1000만원을 받았다. 두 사람은 서울 서초구 한 법무법인에서 이틀 후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8월21일 아침, 조씨는 시장에서 회칼 두 자루를 산 뒤 신문지에 말아 쇼핑백에 넣고 법무법인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계획대로 고씨를 살해했다. 경찰은 ‘우발적 범행’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 수사에서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검찰은 사건 당사자들이 재산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진동)는 강력전담검사를 지정하고 직접검시에 참여하고 수사지휘에 들어갔다. 검찰은 우선 조씨는 물론 주변인들까지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을 진행하고 압수물과 현장 폐쇄회로(CC)TV 등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검찰은 △조씨가 사전에 범행을 준비한 점 △조씨가 피해자 고씨를 단 두 번 만났고, 만난 지 4일 만에 살해한 점 △살인 현장 CCTV에 따르면 조씨가 고씨를 살해한 직후 곧바로 도주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출입문에서 먼 쪽에 앉아 있던 변호사에게 다가간 점 등에 비춰볼 때 조씨가 피해자 고씨의 소송 상대방인 곽씨의 교사로 범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리고 조씨와 곽씨의 휴대전화, 노트북 분석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포착됐다. 조씨가 범행을 머뭇거리자 곽씨는 “(살해 후) 필리핀 가서 살면 된다” “너 나중에 편의점에서 일해야겠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조씨의 모친이 곽씨에게 변호사 비용을 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녹음파일도 있었다.

고씨가 살해된 후 곽씨는 스마트폰으로 ‘살인교사죄 형량’ ‘우발적 살인’ 등을 검색한 기록도 나왔다. 검찰은 이런 과정을 거쳐 곽씨가 고씨를 살해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청부살인사건임을 밝혀냈다.

검찰은 조씨를 상대로 배후를 추궁했으나 그는 단독범행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 곽씨가 ‘사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되자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다. 곽씨의 구속으로 더 이상 자신의 뒤를 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인에 대한 대가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여기에 검찰이 증거를 들이밀자 조씨는 모든 것을 체념한 체 사건 전말을 자백했다.

검찰은 곽씨를 살인교사죄로 추가 기소했다. 곽씨는 사기부터 살인교사까지 혐의 전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재판받는 동안에도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판단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패륜적 성격과 살해 방법의 계획성, 잔혹성 등에서 관용을 베풀기 어려운 범죄”라며 “곽씨를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한다”고 판시했다.

재산 빼돌리기에 가담한 부친과 법무사 김씨에게는 각각 징역 3년,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살해범 조씨는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조부 곽씨는 외손자 고씨가 살해된 후 충격을 받고 같은해 12월 99세로 사망했다. 재산을 둘러싼 가족간의 갈등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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